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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2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원나라 시대의 역학자 송나라가 망하고 원나라가 건국되었지만 한족(漢族)지식인의 한법(漢法)을 행해야 원나라가 번성할 수 있다는 건의를 받아들여 주학(朱學)이 관학(官學)으로 정착되었다. 원대는 주돈이, 정이, 장재, 주희의 전통계보가 공인되어 주학의 지위가 확립됨으로써 역학에도 영향을 끼쳐 원대의 역학은 의리역과 상수역을 절충하는 경향을 띠었다. 역학자 오징(吳澄)은 을 저술하여 주희역의 미진한 부분을 탐색했다. 그는 한림학사, 태중대부 등 관직을 역임했으나 오래 머물지 않고, 역학을 궁구하여 경학지사(經學之師)가 되었다. 오징은 `복희 3도 지산역설 <志山易說> | 경남매일 | 2022-08-10 20:02 송원시대의 역학자 ⑨ 주역 연구가 이 지산남송시대의 의리파 역학자 중 양만리ㆍ양간ㆍ 섭적을 빼놓을 수 없다. 양만리(楊萬里)는 남송초기의 시인으로 그는 문학적 성취로 유명했지만 사회, 정치사와 철학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가 지은은 17년에 걸친 그의 평생 노작이었다. 전조망은에서 `나는 왕필의 학맥은 정이가 정통이고, 양성재가 소종(小宗)이라고 생각하며, 효원과 소동파 등은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했을 만큼 역사적 사실로 경학을 증명했다. 에는 `은 인간사를 가지고 역을 논하여 훗날 지산역설 <志山易說> | 이지산 | 2022-08-03 20:25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