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21:41 (일)
인생의 마지막 '소풍'처럼 떠날 수 있다면
인생의 마지막 '소풍'처럼 떠날 수 있다면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4.01.31 2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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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걸 편집위원
김중걸 편집위원

영화 <소풍>이 설날을 앞두고 어르신들의 가슴을 후벼판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같은 영화 <소풍>의 이야기에 어르신들은 눈물을 훔쳤다. 지난 30일 오후 부산시 중구 롯데시네마 광복점 9관 관람석은 부산지역 홀몸 어르신 100분으로 가득 메웠다. 부산영상위원회와 영화사 로케트필름, 부산연탄은행이 마련한 영화 <소풍> 특별시사회에 관객으로 초청된 어르신들은 동년배 나문희ㆍ김영옥 배우와의 만남을 가졌다. 영화의 이야기처럼 동병상련의 정을 흠뻑 느낀 어르신들은 배우들의 개구진 연기에 웃다가도 자식 문제와 건강 문제에서는 남의 일 같지 않은 우리의 삶, 그리고 노년의 삶을 되돌아봤다. 어르신에게는 롯데칠성음료와 부산의 대표 어묵브랜드 삼진어묵, 궁중병과 브랜드 만나당 제품으로 구성된 설 선물과 소풍베낭을 건넸다.

친구들의 우정이 빛나는 영화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지간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 때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센치한 삐심이 '은심'(나문희), 속 깊은 투털이 '금순'(김영옥), 스윗한 은심바라기 '태호'(박근영)는 60년 만에 고향에서 다시 모여 어느새 10대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운 모습을 눈길을 끌며 여전히 찐친 모먼트를 담아 따뜻하고 훈훈한 웃음을 선사한다. 시장 난전에서 나물을 팔고 있는 금순에게 "나이 많은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있길래"라며 사 온 나물을 건네는 은심과 그런 친구에게 "내는 젊은이야?"라고 화를 내는 금순의 모습에서 순수한 소녀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태호는 "60년 만에 첫사랑 만났는데 이보다 더 중한 일이 어딨노?"라는 한마디로 은심에 대한 마음과 스윗가이의 모습을 보인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자식은 마음 같지 않지만 "친구들 덕분에 다시 사는 것 같았다"는 대사처럼, 여전히 친구와 먹는 막걸리는 달고, 소풍에는 마음이 설렌다.

영화 <소풍>은 80대 노배우들이 주역인 흔치 않은 영화이다. 나문희(82), 김영옥(86), 박근형(83)의 나이를 모두 합치면 251세다. 여배우 2명 나이의 합은 168세다. 노익장의 끝판을 보여 준 영화 <소풍>은 노년층에게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젊은층에게는 부모와 다가오는 미래의 자신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는 영화다. 영화에서는 참 많은 것을 보여준다. "요양병원은 너무 무섭다 집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친구, 돈 빌려달라는 자식의 성화에 "지긋지긋하다"는 은심의 토로나 "(자식한테)해줄 수 있는 거 다 해주뿌래이"라고 말하는 태호, 상충되지 않은 말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영화 <소풍>은 많은 화제를 불렀다. 도합 200년의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시니어벤저스'가 주연을 맡아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운 연기로 웃음과 눈물을 이끌어 낸다. 고령의 대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영화 말미에 임영웅의 노래 '모래 알갱이'가 삽입돼 여운을 더한다. 임영웅은 음원 수익 전액을 영웅시대의 이름으로 부산연탄은행에 특별 기부했다. 나태주 시인은 <소풍> 포스터에 제목 손 글씨와 시 '하늘창문'을 헌정하는 등 많은 사람의 응원으로 만들어졌다.

김영옥 배우는 임영웅의 소문난 팬이고, 나문희 배우 역시 최근 임영웅 콘서트에서 사연이 읽힌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소풍>은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졌다.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문희 배우는 "영화에 노인네들만 나온다니까 투자자가 참 없었다. 한 명 한 명의 진심들이 모여서 영화가 나왔다"고 말했다.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부산 소재 로케트필름이 제작에 나서면서 아름다운 남해바다를 배경으로 촬영됐다. 로케트 필름 김영진 대표 역시 고향이 부산이다. 2018년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한 로케트필름은 영화의도시 부산을 이끌고 있다. 부산 특별시사회에 두 배우와 함께 무대에 오른 김용균 감독 역시 경남이 고향이다.

'소풍' 참으로 가슴설레는 낱말이다. 소풍의 추억은 초ㆍ중ㆍ고등학교 즉 학창시절에서 가장 오래 각인된다. 소풍(消風)은 한자말 그대로는 '삭일 소'에 '바람 풍'이다. '바람을 뺀다'는 뜻이다, 힘겹고 빡빡한 일상에서 탈출해 어깨에 힘도 좀 빼고 가족ㆍ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삶의 활력소를 되찾는 것이다.

마음은 여전히 소녀지만 파킨슨병에 걸려 심란해하는 은심과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는 금순의 모습은 노년의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존엄사도 거론된다. 나문희는 지난해 말 남편을 하늘로 보냈다. 연명 치료문제도 제기했다. 뇌종양을 앓던 태호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실의에 빠져 있던 은심과 금순은 김밥을 사 들고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소풍을 떠난다.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지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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