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듬고 표현하는 게 중요
마음 비우고 관객 사랑해야
제자 빛나는 얼굴 볼 때 보람
내면이 꽉 차야 외면이 빛난다는 마음으로 인문학 공부와 글쓰기 등을 전투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음악에 대한 감각이 탁월하고 거기에다 인문 교양을 두루 갖춘 보기 드문 인재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한다.
노래를 하다 보면 결국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누구도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생각에 좌절하지만, 묘한 흥분과 오기가 생기면서 더 잘 살고 싶다. 이런 순간을 노래로 삶으로 표현하고 싶다. 지난 20일 저녁 흥동 리우카페에서 김포대학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김해 서울실용음악학원 안수지 대표를 만났다.
안수지 대표(37)의 박식함과 언변에 놀랐다. 끝없는 학구열과 겸손함과 자유로운 사고와 넓은 마음 그릇에 더 놀랐다. 실용음악에 대한 이야기와 어떤 마음과 태도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등등의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 노래를 부를 때 중시되는 태도 등 다른 무엇이 있는가?
노래는 대중예술이면서 동시에 전시 예술과 다르게 아주 찰나의 순간을 오롯이 표현하는 예술이다. 아무리 긴 노래도 5분을 넘기지 않아 온전히 몰입한 상태에서 부르게 된다. 필요한 건 온전히 내 안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기술을 통해 매끄럽게 처리된 소리로 듣는 사람에게 공간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내 마음이 꽃밭이면 듣는 분들도 꽃밭이 돼야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내가 아닌 진짜 내 안의 나를 다듬고 만나고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음악의 유토피아 속으로 지친 사람들이 쉬어 가도록 내 마음은 비우고 내 앞에 있는 관객을 충분히 사랑해야 노래할 수 있다.
■ 실용음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88올림픽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에 본격적인 문화 예술의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났다. 90년대 문화와 음악들이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맞벌이하러 나가도 심심하지 않았다. 이소라, 윤상 선생님들의 라디오를 들으며, 세계의 음악과 아름다운 시적 의미가 가득한 가사들을 접하며,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동아방송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 훈련과 트레이닝을 통해 진학했고 가르치는 일을 자연스럽게 업으로 삼게 됐다.
■ 실용음악에 대한 정의를 해달라.
실용음악은 주로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을 가리킨다. 대중적인 흥행을 목적으로 하며,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둔 음악을 의미한다. 실용음악은 팝, 락, 힙합, 컨트리,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며, 일반적으로 라디오, 영화, 광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한다. 다양한 음악 제작자, 작곡가 및 아티스트들이 협업해 만들고, 대중적 성공을 목표로 한다. 예술적 가치 추구와 동시에 상업적 형태로 구성되는 음악이다. 그래서 단순히 노래와 음악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우리 사회 문화의 복잡한 측면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 노래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노래는 종합예술인데 단순히 기술만 배우러 온다, 우리나라처럼 노래방 문화가 활발하고 음악 잘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없다 보니 쉽다고 생각한다. 한두 달 배우고 나면 많이 놀란다. 이렇게 자세하고 섬세하게 훈련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숨 마시는 것부터 소리 내는 것, 발음을 자음과 모음을 나눠 훈련하고 장르도 다양하게 알아야 접목할 수 있다. 재미로 배우겠다는 의미를 넘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상을 표현한 음악과 가사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 거다. 늘 처음 레슨 할 때 "삶이 말이 되고 말이 글이 되고 글이 시가 되고 시에 마음이 담긴 멜로디가 붙으면 비로소 노래가 된다"고 말해준다. 함축적 의미를 충분히 음미하고 표현하는 예술이 '노래'다.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태도가 있으면, 의외로 노래를 통해 아름다운 자기표현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 대중들이 실용음악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말해 달라.
19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실용음악은 근대 음악산업의 형성과 더불어 시작되고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 20세기를 지나 대중문화의 주요 요소가 돼 21세기 지금 현재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전 세계가 k-pop을 즐기고 있다. 시대상이 반영되는 예술이지요. 실용음악은 상업음악이라는 정의를 통해 음악=돈이라는 공식이 생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실용음악은 충분히 예술성을 갖고 있다. 우린 100년 전 200년 전 사람들은 모르지만 그때 음악을 지금도 듣는다. 좋은 목소리, 발음으로 훈련한 노래를 우리 가족의 음악으로 남겨 놓으면 사람은 사라져도 음악은 남는다. 실용음악의 발전으로 다양한 아카이빙을 통해 남길 수 있다.
■ 인문학 공부도 많이 하고 독서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고 공부를 하시는지?
원래 책을 좋아하고 일기를 오래 썼어요. 2년 전에 보육원에서 자라 만 18세에 자립해야 할 처지에 놓인 새내기 대학생이 방학 중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기사를 접했다. 남긴 유서에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라 적혀 있었다. 그 뒤 읽는 것, 쓰는 것, 부르는 것에 책임감이 생겼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고 글을 쓰는 모임을 만들었다. 현재 김해화정생활문화센터 어울림 제1호 동아리로 등록한 '낭독 살롱'도 그 마음으로 시작했다. 다양한 연령대들이 읽고, 쓰고, 낭독하며 선한 영향력을 나눈다.
■ 가장 보람이 있을 때는 언제인가?
학생들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것을 볼 때다. 처음엔 단순히 노래를 '노래'라는 형식으로 이해하고 듣던 제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고, 더 좋은 아티스트로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예쁘다. 힘겹게 연마하며 씨름하는 무형의 예술 속에 자기 자신이 담겨 있는 모습을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찬물에 뛰어든 얼굴처럼 보인다. 무언가 자기 안에서 깨어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데 그 순간의 얼굴은 나만 볼 수 있는 특권이다. 밝게 빛나는 그 얼굴을 볼 때마다 행복하고 보람을 느낀다.
■ 어떤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는가?
배운다는 마음으로 가르친다.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생김새, 목소리, 말투, 성격들이 다 다르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우주가 온다'라는 김형주의 시구처럼 온 우주들을 만나고, 초월적으로 세상을 이해 순간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방금까지 김 과장, 박 선생님, 이 대리, 누구의 딸 아들, 어머니, 아버지로 불리던 사람들이 내 앞에선 오롯이 '가수'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면 경이롭다. 몇 마디 피드백이 오고 가면 비장하게 마이크를 다시 잡고 악기를 잡는다. 과감한데 전혀 우습지 않다. 얼마나 멋진지 모른다.
안수지 대표 프로필
☞ 마산에서 태어나 김해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동아방송예술대학 진학 후 서울의 유명 기획사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 이후 부산에 있는 ccm 밴드 '늘 노래 뉴젠' 멤버로 활동하다 김해 서울실용음악학원을 설립(김해시 내외중앙로 73)했고, 대표로 있다. 김포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다양한 음악 활동과 교육 활동 및 문화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