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19:58 (일)
이사벨과 콜럼버스
이사벨과 콜럼버스
  • 경남매일
  • 승인 2024.01.1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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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홍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청 개발본부장
김제홍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청 개발본부장

스페인이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 '히스파니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로마는 이베리아반도를 '히스파니아(Hispania)'라고 불렀다. 유럽 남부의 이베리아반도,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이르는 길목에 자리 잡은 스페인은 유럽과 세계 역사에서도 큰 역할을 했던 국가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한 '통일 스페인'을 완성한 영웅이 있다.

8세기부터 16세기까지, 약 800년간의 유럽의 숙원인 '레콩키스타(Reconquista)' 즉 이교도 이슬람에 빼앗긴 국토를 회복한 그 주인공은 바로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 1세이다. 이사벨이 태어난 그 시대 이베리아반도에는 포르투갈, 카스티야, 아라곤, 그라나다 등이 공존했다. 그녀가 여왕으로 있던 카스티야와 남편 페르난도 2세가 통치하던 아라곤이 연합하여 이베리아반도 최남단에 있었던 무어인들이 세운 그라나다를 함락시키고 이슬람 세력을 아프리카로 쫓아내면서 분열된 이베리아반도의 모든 왕국을 통일했다. 그 공으로 지금의 스페인 사람들은 이사벨 여왕을 '통일 스페인의 어머니', '할머니'라는 애정 어린 호칭으로 부른다.

이사벨 여왕은 이베리아반도의 카스티야 왕국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왕인 이복오빠 엔리카 4세의 견제를 받아 어린 나이에 왕궁에서 쫓겨나 밑바닥 생활을 해야 했다. 이사벨은 불과 10세도 안 된 나이부터 병든 어머니와 젖먹이 동생을 돌봐왔고 그 후에도 목숨을 건 권력투쟁을 겪었지만 끝내 스페인 여왕이 되었다. 우리가 가끔 먹는 '카스텔라'도 카스티야에서 유래한 빵이다.

여왕 이사벨은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다. 그녀는 성직과 영주를 겸임한 귀족들의 저항과 내란, 포르투갈, 프랑스 등 통일 스페인을 두려워한 이웃 유럽 국가들의 견제, 신권을 무기로 스페인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교황 등 내외부의 위협을 이겨내고 약 200년간 '스페인 황금시대'를 열었다.

이사벨 여왕은 사기꾼이라고 비난받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후원한 인물이다. 신대륙 발견을 위한 후원을 받으려고 무려 8년 동안 유럽을 떠돈 콜럼버스에게 이사벨 여왕은 결혼할 때 가져온 자신의 개인 패물까지 팔아서 지원했다. 이사벨은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지배에 자극을 받기도 했지만 영토 확장과 가톨릭 전파를 목적으로 콜럼버스를 후원한 것이다.

그 당시 장거리 항해에는 극한의 고통과 위험이 따랐다. 악천후 및 해적과 사투를 벌여야 했고 원인 미상의 병(나중에 괴혈병으로 밝혀짐)은 많은 선원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콜럼버스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불안해하는 선원들을 달래는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선상 반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는 사기꾼답게 두 종류의 항해일지를 적었다. 하나는 자신이 계산한 진짜 거리를 기재한 일지이고, 다른 하나는 선원들을 속이기 위해 실제보다 짧은 거리를 기재한 일지였다고 한다.

콜럼버스의 성공은 '대항해 시대'를 열었고, 스페인은 아메리카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유럽의 강자가 될 수 있었다. 신대륙의 금, 은, 설탕 등 풍부한 자원은 유럽 산업혁명의 바탕이 되었다. 세계사의 중심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였다. 이사벨은 통일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벤처투자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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