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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의 꿈과 뜻밖의 결과
산유국의 꿈과 뜻밖의 결과
  • 경남매일
  • 승인 2024.01.0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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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홍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개발본부장
김제홍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개발본부장

경북 포항 지역은 예전부터 석유 부존 가능성이 제기되던 곳이었다. 그 근거가, 삼국유사에 경주 일대에서 사흘 동안이나 불길이 솟았다는 기록, 또 지질 조사 결과 포항 지역이 신생대 제3기층(석유가 주로 나오는 퇴적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1976년 1월 15일 청와대 연두 기자회견장.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영일만 부근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포항 석유' 발표에 학계는 당황했는데, '화강암으로 막힌 지하 1400m에서 석유가 나올 수 없다'는 견해가 우세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모두 반대했기에 박정희 대통령은 정부 주도로 석유 시추를 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중앙정보부 주도로 1975년에 포항 영일만 일대 지역에서 석유 시추가 시작되었다.

1975년 5월 중앙정보부는 포항 영일만 인근에 시추공 3개를 뚫기 시작했다. '시추공1'은 지하 1,150m 지점에서 단단한 화강암층에 막히기 시작했다. '시추공2'도 12월까지 지하 1400m를 팠지만 결국 화강암층에 막히고 말았다.

그러던 1975년 12월 3일 새벽 갑자기 '시추공2'에서 시커먼 액체가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드럼통 한 개 정도의 소량에 불과했지만 시추 성공 사실은 즉시 청와대에 보고되었으며 이 원유 샘플은 부랴부랴 직접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1976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공식 발표를 해 버린 것이다.

화학공학을 전공했던 오원철 경제수석은 전문가들에게 샘플을 보내어 분석하게 했다. 분석 결과 증류시험 그래프 중 경유 성분만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대한민국 포항 영일만에서 나온 원유는 일반적인 원유와는 현저히 다른 비정상적으로 경유함량이 높은 사실상 '경유'가 나온 것이다. 시추할 때 냉각수로서 물을, 윤활제로서 경유를 상당량 주입시켰으며 이런 '기름 섞인 물'이 바위틈을 타고 이동해서 모여든 것으로 추측된다.

포항 석유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박 대통령의 석유 탐사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원유 탐사 지역이 포항뿐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됐다. 대표적인 곳이 포항과 유사한 지층대인 전남 해남이었다.

1990년대 초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석유 탐사 과정에서 뒤집어진 지층 곳곳에서 새 발자국 화석과 공룡 발자국 흔적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1996년부터 진행된 공룡 화석지 조사로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2㎞ 해안에서 다양한 공룡 발자국 514점과 익룡류 발자국 443점이 잇따라 발견됐다. 이중 물갈퀴새 발자국은 중생대 백악기 때 찍힌 것으로 밝혀졌다. 그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미국 유타주 그린리버층(5500만년 전)보다 4000만 년 정도 앞선 발자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길이 38㎝의 익룡 발자국도 나왔다. 1996년 여름부터 발견된 대형 공룡발자국 113개도 주목을 받았다. 길이 1m, 깊이 30㎝가 넘는 발자국은 몸길이 8m 정도의 대형 조각류(鳥脚類)의 것으로 확인됐다. 우항리 일대(123만 530㎡)는 1998년 10월 17일 천연기념물 394호로 지정됐다.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원유를 찾겠다는 시도가 엉뚱하게도 세계적인 공룡 화석지를 발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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