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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어업의 발상지 욕지도 ⑥
근대 어업의 발상지 욕지도 ⑥
  • 경남매일
  • 승인 2023.12.2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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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욕지도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이 '자부포(自富浦)'이다. '통영시사(1999)'에는 자부포는 욕지항의 입구 왼쪽에 위치한 포구로 '자보랑개' 또는 '자부랑개'로 불렸다고 한다. 자부랑개 안쪽에는 '골개'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동항리의 옛 이름이다. '자부랑개'와 '골개'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골개'는 골이 깊은 개(포구)에서 유래되고 '고을개'로 읽히면서 한자로 읍동(邑洞)으로 표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순우리말 '개'는 바닷가라는 뜻이다. 그리고 '자부랑개' 역시 포구의 형태가 한쪽으로 치우친, 즉 짜부라진 모양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의 의견도 있다.

1899년 '함안군총쇄록'에는 여러 욕지도의 마을이름이 나오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좌부포'나 '자부포'라는 명칭은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의 자부포는 다른 마을보다 늦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자부랑개'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여러 형태로 바뀌기도 한다. 1903년 발간된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에는 坐釜浦(좌부포)로 쓰고 일본어로 'チャブランケ(쟈부랑께)'로 표기되어 있다. 또, 1910년 발간된 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에는 한자로 座富浪浦(좌부랑포)라고 적고 옆에 역시 일본어로 'チャブランケ(쟈부랑께)'로 기록하고 있다,

일본 가가와현(香川縣) 사람들이 욕지도에 많이 이주했는데, 그중에서도 오다(小田)촌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들의 해외출어를 기록한 '香川縣海外出漁史'에 따르면 한자로 '自浮浦(자부포)'로 표기되어 있다.

'자부랑개'라는 순우리말이 문헌에 발음이 유사한 한자 坐釜浦, 座富浪浦, 自浮浦 등으로 기록되면서 하나의 명칭으로 정립되지 않았다. 그러다 도쿠시마 현 출신인 도미우라 가쿠타로(富浦覺太郞)가 자부랑개의 중심 인물로 떠오르면서 자신의 성(富浦)과 자부랑개라는 명칭이 비슷하니 좌부포(坐釜浦)나 座富浪浦(좌부랑포)가 아니라 자기 성앞에 '自'를 넣어 自富浦(자부포)라고 부르게 된다(욕지면지, 2008).

1912년 3월 1일 욕지도 우편소가 개소되었을 때, 도미우라가 초대 소장으로 부임하여 1928년까지 소장을 역임했다. 도미우라 때문에 자부랑개가 自富浦가 되니 자부포가 마치 도미우리가 정착한 이후 생긴 마을로 오해받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현재 마을의 공식적인 명칭 역시 自富浦(자부포)로 표기되어 있는데, 통영에 거주하는 일부 지식인들은 이 명칭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욕지면지에 의하면 1895년경 도미우라는 욕지에서 수산물을 싸게 구입하여 본국 일본에 팔아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1900년대에는 좌부랑개에 정착하여 축적된 부를 이용하여 욕지 어민들에게 어획량의 일부를 받기로 하고 선박, 어구, 어업자금을 빌려주어 더욱 부를 쌓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10년 한일합병이 되면서 도미우라는 좌부랑개에서 자기 세상처럼 굴었다고 한다. 그는 엄청난 재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광산에 투자해 재산을 탕진했고, 노후에는 타국인 욕지도의 좌부랑개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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