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32 숭신 65년에서 말하는 계림 위치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32 숭신 65년에서 말하는 계림 위치
  • 경남매일
  • 승인 2023.11.2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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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여여정사 주지·(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여기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인 사관(史觀)과 개인이나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개입되면 원래의 사실과 다른 결과를 불러오기 십상이다. 한·일 고대사의 쟁점인 임나의 위치 문제도 이와 같다. 원래의 임나는 분명히 대마도와 일본열도에 있었지만, 과거 일제는 정한론을 기치로 이를 의도적으로 왜곡해 한반도의 '가야가 곧 임나다'라고 억지를 부렸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의 주류 사학계가 일제의 학풍을 이어 아직도 이 터무니없는 학설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의 이치와 마찬가지로 역사도 상식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쉽다. 임나가 『일본서기』라는 일본의 역사서에 200회 이상 집중적으로 나오므로 당연히 임나를 일본에서 찾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임나와 관련한 지명이나 방향 그리고 지형의 조건들도 일본에서 찾으면 쉽게 풀린다. 『일본서기』 <숭신 65년조>에 "임나는 축자국으로 2000여 리 가고, 북은 바다로 막혀있으며,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는 기사가 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여기에 등장하는 축자국이 어디인지? 북쪽이 바다로 막힌 지형 조건을 갖춘 곳은 어디인지? 또 계림은 어디를 말하는지? 이들 세 가지 물음만 해결하면 임나의 위치는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대개 축자국 위치는 북큐슈 후쿠오카 일대라고 하며, 북쪽이 바다로 막힌 곳 또한 그곳이다. 그럼 계림은 과연 어디일까? 기존 학계에서 말하는 신라의 수도인 한반도의 경주일까? 고대 일본열도는 무주공산(無主空山)과도 같았다. 토착민인 아이누족은 미개했고 결국 한반도에서 이주한 이주민들이 서서히 열도를 점령하게 되었다. 이후 가야와 삼국은 모두 분국을 세웠는데 특히 신라의 분국은 이즈모(出雲) 지역으로 추측된다.

한밭대의 윤행순 교수는 이즈모 지역의 역사서인 출운풍토기(出雲風土記)를 중심으로 「일본 고대 문헌에 나타나는 고대 韓國語의 잔영」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그녀는 이즈모 지역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오래전부터 대륙의 신라와 밀접한 교류를 가져왔다고 했다. 그녀가 연구한 『출운풍토기』는 서기 733년에 쓰여졌으며 일본 고대사를 밝혀주는 귀중한 문헌으로 역사성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여기에 나타난 일본의 고대어는 대륙의 삼국과 관련이 있는데 그중 신라와 가장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만약 이즈모(出雲)에 신라계 이주민들이 살았다면 그곳에 본국 신라의 이칭(異稱)인 계림이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또 여기에서 바라보면 큐슈 축자국 인근에 있었던 가야 분국 임나는 정 서남 방향에 위치해 <숭신 65년조>의 기록과 일치한다. 이즈모는 경주의 바다 접경인 감포나 포항에서 배를 띄우면 해류에 의해 며칠 내에 배가 닿는다는 곳이다. 이곳에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일본의 건국설화인 '연오랑 세오녀'의 전설이 민간에서 전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고대 신라인들이 사용했다는 유물들이 곳곳에서 발견돼 그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숭신 65년조>에서 말하는 "계림 서남쪽"의 계림이란 반드시 도읍만을 지칭하지 않았다. 고대에는 신라를 계림으로도 인식했다. 신라인 혜초(704~787)스님은 인도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에서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끝 서쪽에 있네. 일남(日南)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라고 한 것처럼 당대에는 계림과 신라를 동일시했다.

이처럼 임나 위치가 계림의 서남쪽이란 기사는 대륙의 경주에서 본 임나의 위치가 아니라 일본열도 내에 있었던 신라의 분국 이즈모의 계림에서 본 임나의 위치를 말한 것이다. 『일본서기』를 편찬할 당시 초기 임나인 대마도와 열도로 이주해 왔던 큐슈의 후기 임나는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도 있었고 사라진 곳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편찬자가 수집한 자료는 당시까지의 기록이나 구전 등으로 남겨진 큐슈의 후기 임나였고, 이즈모의 계림에서 볼 때 그곳이 서남쪽 방향에 위치했다고 기록했던 것이다.

위의 주장들을 종합해 보면 <숭신 65년조>에서 말한 임나의 위치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김해시사』나 『부산시사』 『전라도천년사』 등에서 주장하는 한반도가 아니라, 고대 축자국 부근에 있었던 말로국 즉 현재의 마쓰우라(松浦)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년 1월에 이 사실의 확인을 위해 답사가 예정되어 있는데 내심 기대하고 있다. 진실 규명을 위해 역사의 현장을 가보면 문헌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뜻밖의 수확들도 많기에 마음 한편은 이미 그곳을 즐겁게 배회하고 있다.

임나 위치도
임나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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