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31 전기 임나와 후기 임나의 위치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31 전기 임나와 후기 임나의 위치
  • 경남매일
  • 승인 2023.11.2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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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여여정사 주지·(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흔히 정치를 말할 때 '살아 있다' 또는 '생물(生物)'이란 표현을 쓴다. 그런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역사 또한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이 대하드라마에는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명멸하며 누군가는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시간이 흐른 뒤 역사가 된다. 또한 역사는 당대의 기록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시대적 요구에 따라 후대에 다시 소환되기도 하며, 재해석을 통해 그 가치가 전혀 다르게 평가되기도 한다.

역사에 등장하는 지명(地名) 또한 생물 같아서 여러 이름으로 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지명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연구하는 <가야불교>에는 김수로왕의 비인 허왕후가 매우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가야 8대 질지왕은 그녀와 수로왕이 합혼한 것을 기리기 위해 주포마을 산기슭에 왕후사(王后寺)라는 절을 짓는데 이후 폐사된다. 그런데 후대의 기록을 보면 임강사(臨江寺)라는 사찰이 창건되어 왕후사의 정체성을 잇는다. 이처럼 지명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실체들은 장소를 옮겨 가며 그 정체성을 계승한다.

가야인이 일본 열도로 이주해 세웠다는 가야의 분국인 임나(任那) 역시 가야의 정체성이 옮겨간 경우이다. 옛 가야의 영역이었던 부산과 김해의 고지대에서는 대마도가 잘 관측된다. 따라서 원거리 항해가 가능했을 때 가야인들은 대마도로 집단이주했고 '임나'라는 의미 있는 접두어를 붙여 '임나가라' 또는 줄여서 '임나'라는 소국을 세웠다. 이것이 최초의 임나 즉 <전기 임나>이다. 이후 가야인들은 대마도에서 보이는 본토 큐슈까지 진출하는데 이를 <후기 임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보아 『일본서기』 <숭신 65년조>에 기록된 임나는 대마도에서 본토로 진출한 이후의 후기 임나이다. 왜냐면 전기 임나인 대마도의 위치와 <숭신 65년조>의 "임나는 축자국으로 2000여 리 가고, 북은 바다로 막혀있으며,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는 기사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축자국으로 2000여 리'를 제외하고라도 대마도는 북쪽뿐 아니라 사방이 모두 바다로 막혀있다는 것과 계림(경주)의 서남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서기 720년 『일본서기』를 편찬할 당시 북큐슈에는 축자국이 있었다. 때문에 『일본서기』 편찬자들은 야마토 왜의 중심지였던 나라(奈良)를 기준으로 거리를 계산해 '축자국으로 2000여 리 간다'라고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임나는 축자국이 아닌 '축자국 부근'에 위치했다는 말이다.

역사 칼럼니스트로 『여기가 임나다』의 저자인 최규성 선생은 임나의 위치를 큐슈 사가현의 마쓰우라(松浦)임을 논증했다. 그는 언어학을 통해 지명의 변천을 규명했고 임나의 위치를 송포로 비정했다. '松浦'의 일본 발음이 마쓰, 마츠인데 우리말의 장자를 뜻하는 '맏이' 또는 '맡'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임나에서 '任' 역시 '맡기다'의 '맡'은 같은 발음 '맏'의 음을 빌렸다고 했다. 즉, 임나는 '맏나라'라는 우리말 발음에서 왔다고 했다. 또 그는 '맏나'와 '말로'는 음이 넘나들기에 '마쓰우라'는 고대 왜의 소국인 말로국(末盧國)이라고 주장했다. 왜의 수도 나라(奈良)에서 고대 축자국 좌측에 위치한 말로국까지는 780㎞로 대략 2000여 리쯤 된다.

한편 북한학자 조희성은 임나를 오까야마현 기비(吉備)로 비정했다. 그는 『임나일본부 해부』를 통해 가야의 분국인 임나가 기비임을 논증했다. 그는 『기비군지』 상권에서 기비의 중심에 있었던 나루 이름이 오랫동안 가야진(伽耶津)으로 불렸다는 사실과 유적·유물을 통해 오까야마 일대에서 임나뿐 아니라 고구려·백제·신라 소국들의 위치까지 찾아냈다. 사실 오까야마의 옛 지도를 보면 북쪽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있어 '北阻海'라는 조건과는 맞아 보인다. 하지만 "계림의 서남에 있다"라는 기사와는 다른데, 그가 규명한 임나는 신라(계림)의 서남이 아닌 서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비가 대마도와 큐슈로부터 내륙으로 이동해 온 임나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대마도의 전기 임나가 큐슈와 기비 등으로 옮겨갔던 것이다.

시간을 기준하면 숭신 65년(서기 전 33) 기록과 일치하는 북큐슈 말로국이 최초의 임나가 맞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자국의 건국연대를 올리기 위해 기년(紀年)을 뒤죽박죽으로 조작한 역사서다. 마찬가지로 편찬자는 가야인이 개척한 대마도가 초기의 임나였음을 간과하고, 북큐슈로 옮겨간 후기 임나만 애매하게 기록해 놓아 뒷사람들에게 혼란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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