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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황실문화' 복원한 황수로 궁중채화장
'K-황실문화' 복원한 황수로 궁중채화장
  • 경남매일
  • 승인 2023.11.0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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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걸 편집위원
김중걸 편집위원

국가무형문화재 제124호인 황수로 궁중채화장(89)이 은관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모두예술극장에서 열린 '2023 문화예술발전 유공 시상식'에서 수훈했다. 황 궁중채화장은 공적은 60여 년간 조선왕조실록에서 기록만으로 내려오던 조선왕조 의례의 궁중채화를 연구·복원한 공로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꽃 전문박물관인 '한국궁중꽃박물관'을 건립한 공로도 인정받았다.

'한국궁중꽃박물관'은 황 궁중채화장이 궁중채화를 복원·전승·계승하기 위해 사비 150억 원 등 모두 200억 원을 들여 건립했다. 여기에다 APEC 정상회의 조선왕조 궁중채화 특별전을 비롯해 UN본부 한국전통공예특별전 등 수많은 국내외 전시와 '한국 꽃 예술 문화사'를 비롯해 '아름다운 한국채화', '아름다운 궁중채화:황수로 한국채화 이야기', '꽃, 웃음-염화미:화장 황수로의 삶과 꽃 이야기' 등을 출간하는 등 한국 궁중 예술의 전승 발전과 한국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했다.

궁중채화장 황수로 선생은 인간문화재 이전에 기업가이다. 동부산 컨트리클럽 회장으로 골프 스포츠를 통한 국민의 건강한 삶 영위에 일익을 맡고 있다. 기업 가문의 자손이기도 한 황수로 회장은 국내 굴지의 모직회사인 태창기업 일맥 황래성 회장의 딸로 성장했다. 한국궁중채화연구원 화장과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황수로 궁중채화장은 본래 이화여대에서 가정학 분야를 전공한 한마디로 현모양처로 성장했다. 그런 황 궁중채화장은 궁중채화의 길로 들어서 궁중채화를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반열에 올렸다.

황 궁중채화장이 채화의 길에 들어선 이유는 숭고하기까지 하다. 1960년대 남편과 함께한 일본 유학 때 황 회장은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어떤 자리에서건 기회만 생기면 '꽃꽂이는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일본의 전통문화'라고 홍보하고 대학 문화·교양 수업에서도 꽃꽂이를 유일무이한 자기들의 전통이라고 자랑하는 것을 수긍할 수 없었다고 한다.

황 궁중채화장의 거부반응은 단순한 반일 감정만이 아닌 집안 내력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외조부는 고종 황제 때 궁내부 주사의 관직을 지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간혹 황제가 하사한 잠화를 집으로 가져오곤 했는데 어린 시절 상당 기간 외가에 머물면서 실물 잠화를 접했다. 집안 어르신들이 직접 꽃장식을 하던 모습도 자주 보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우리나라에도 꽃장식 전통이 있었다"는 유학생의 강변은 일본인들은 멸시에 가까운 냉소를 보였고, 역사적 기록이나 실제 작품 등 증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증거가 없었다고 한다.

귀국 후 황 궁중채화장은 동아대 대학원(사학과)에서 늦깎이 석·박사 학위를 받는 등 본격적인 꽃 전통 공부에 매진했다. 학계 거두인 정중환 교수의 지도로 전통 꽃 문화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연구에 뛰어들었으나 의궤 서화는 물론 문헌에 남은 화장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지도교수는 "이건 놀랍도록 새로운 분야이다. 연구를 다듬어 논문으로 내 알려야 한다"며 격려했다. 1990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제 강점기 조선왕조 문화 말살 만행으로 명맥이 끊긴, 역사 속에서 잊혔던 비단 꽃들이 '궁중채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꽃을 피웠다. 황수로의 궁중채화는 2005년 부산 APEC, 200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방안 등 행사장의 국빈 만찬장을 장식하며 궁중채화를 세계에 알렸다.

궁중채화는 비단, 종이, 모시, 삼베, 가족 등의 소재로 만들어진다. 황 궁중채화장은 소재의 자연 염색에 가장 공을 들인다. 장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 궁중채화는 임금이 있는 곳 좌우에는 언제나 홍도화와 백도화 화준이 놓였다. 홍·백 두 화준은 국가의 상징이다. 생화가 아닌 채화 사용은 계절적 요인도 있었지만 유교를 숭상한 조선 왕실에서 꽃을 꺾기보다는 채화를 선호한 것 같다고 한다. 황 궁중채화장은 전수받지 못했지만 결국 채화들을 하나하나 조심히 뜯어 보면서 비단에 배접을 해 꽃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의 '윤화매십전'에 나타난 기법도 참조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황 궁중채화장은 궁중채화 중요문화재 지정 노력을 하던 중 덕수궁 궁중채화 전시 때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지정 신청 요청'을 계기로 10년 만에 2013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에 등재됐다. 양산시 매곡동 한국궁중꽃박물관은 전통기예 전수관이자 궁중채화 1호 보유자로서 그동안 애써 만든 채화를 보존하기 위해 만들었다. 황 채화장은 전통 기법만 고수하는 대신 궁중채화의 맥을 잇기 위해 실용적인 대안 찾기를 바라고 있다. 문화재청에 '채화장'을 '화장'으로 명칭 변경을 건의한 것 역시 같은 생각이다. 황 채화장의 노력으로 K-궁중문화가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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