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17:00 (일)
우리의 선택 ③
우리의 선택 ③
  • 경남매일
  • 승인 2023.08.28 2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정기 전 한전·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한국중공업 사장

그 혼란 중에도 이승만 같은 지도자가 나와 단독정부라도 세우고 사회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갔다. 유엔은 남한 정부만 합법 정부로 인정했다. 김구, 조소앙, 여운형 같은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긴 했다. 그러나 이승만에 비교하면 세계를 보는 안목이 많이 부족했다.

이승만은 프린스턴대 박사다. 80여 년 전인 1940년에 'Japan Inside Out'(일본의 가면을 벗긴다)을 저술, 미국 조약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일본의 미 본토 공격을 정확히 예언했다. 진주만 공격이 발생하면서 이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됐다.

해방 후 우리들의 가난은 필설(筆舌)로 형언키 어렵다. 연 소득이 60달러밖에 안 되니 끼니를 건너뛰는 게 일상이었다. 가난은 당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더구나 굶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란 제군들은 절대 이해 못 한다. 듣기 싫지! 정치를 잘못하면 기아(飢餓)는 어디서나 일어난다. 20여 년 전에 김정일은 북한 동포를 220만 명이나 굶겨 죽였다. 우리도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그때 미국이 큰 도움을 줬다. 미국은 GARIOA(점령지구구호대책반)와 ECA(경제협조처)를 통해 약 6억 달러를 제공했다.

해방 직후 나라가 큰 위기에 처한다. 미국이 극동의 방어선을 한반도에서 일본 본토로 옮겼는데도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중공이 대륙을 석권함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를 버린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은 알류샨, 일본,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후퇴했다. 과거 1950년 1월 '애치슨 라인'이 선포됐다. 대부분 우리 국민은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대만과 함께 우리가 미국의 방어선에서 빠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이 한국을 버리기가 무섭게 김일성이 쳐들어왔다. 1950년 6월 25일이다.

나. 한국전쟁과 미국

6월 25일 새벽 38선 전역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공격 개시 3일 만에 서울이 떨어졌다. 어처구니없는 전쟁이다. 그때 미군은 1년 전 500명의 고문단만 남기고 다 철수한 상태였다.

그 무렵, 국민을 아연케 한 것은 '아침은 개성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라는 말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국방장관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부끄럽다. 개전과 동시에 국군 1사단(개성, 문산), 7사단(의정부), 8사단(강릉)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그들에겐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의 날벼락이었다. 병력도 반밖에 없었다. 대부분 병사가 외박까지 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춘천 지역은 달랐다. 춘천을 지키던 김종오 장군의 제6사단만은 진지를 고수, 북한군의 공격을 막았다. 6사단은 외출도 금하고 24일부터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