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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정신을 지닌 사람이 되자
주인정신을 지닌 사람이 되자
  • 경남매일
  • 승인 2023.08.1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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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식민교육은 식민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양성이 목적이다. 그래서 국가나 민족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을 한다.

일제는 식민사관과 식민지근대화론을 철저히 교육하여 주인정신이 결여된 인간 양성을 하였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는 주인정신을 지닌 사람이 되자고 강조하였다. 그러기 위해 참되고 실력있는 무실역행(務實力行)하는 사람이 되자고 하였다.

그러나 주인정신이 결여되어 나라야 어떻게 되든 자신과 자신의 집단만 살고 보자는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적지 않다. 책임감이 결여되어 잘못을 모면하기 위해 남 탓을 하는 정쟁을 야기한다. 이것에 의하여 야기되는 갈등이 국가발전을 암울하게 하고 억울한 일들을 야기한다.

주인정신을 지니면 이런 정치인과 집단을 맹목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정치발전이 되도록 하는데 주인정신이 결여된 맹목적인 지지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자기 지지당의 잘못은 합리화하고 상대당은 무조건 나쁘다고 한다.

교육은 가능성 찾기라고도 한다. 제대로 된 가능성이 찾아지려면 자신의 삶이 주체적이어야 한다. 의타적이거나 식민잔재 의식으로는 주체적인 인식과 주체적인 삶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진정한 보수나 진보가 아닌 식민우파와 짝퉁 진보가 정치를 하여 친일과 반일에 머물러서 극일(克日)이 되지 못하고 친중과 반중에 머물러서 극중(克中)이 되지 못하여 국가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극일과 극중을 하는 지름길은 식민사학 카르텔을 극복하여 바른 역사관을 지닌 주인정신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임제선사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하였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머무는 곳마다 참되게 된다"는 의미다. 마음공부 뿐만 아니라 세상살이나 역사관과 가치관에도 적용되는 삶의 교훈이 된다. 삶의 행태를 보면 주인ㆍ손님ㆍ하인이 있다.

나라가 어려워지면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망하면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사람이 주인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주인에 해당된다. 주인정신을 갖게 되면 국가나 민족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된다.

손님은 나라야 어떻게 되든 자신의 이익을 우선한다. 매국을 하거나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제는 철저하게 가치 없고 저열한 조선을 만들기 위해 식민사관에 입각하여 주인정신을 갖는 근원이 되는 단군 말살을 위해 단군 관련 역사책을 수집하여 없앴다. 대한제국 시기까지 단군을 실존인물의 단군사화로 교육하던 것을 단군신화로 교육하였다. 이것이 해방후 식민사학이 역사학계를 장악하면서 그대로 이어져서 고조선 시대의 유물과 유적은 고조선이라는 나라명칭 대신 선사시대나 청동기시대 등으로 표현하고 박물관 시대 연표에 고조선 건국이 명기되지 않아 논란이 야기되기도 하였다.

주인정신을 지닌 분들이 해방후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하였다. 주도적인 역할을 한 안재홍은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은 독립운동가로 민족주의 사학자였고, 백낙준은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종교사학을 전공하여 1927년 <조선개신교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단군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고 배척하는 사람은 일제강점기에 민족말살 정책에 협조했던 기독교인들의 유풍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이었던 백낙준 박사가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채택한 것을 보면 진정한 기독교인은 단군을 민족의 시원으로 홍익인간의 가치를 존중한다.

대한민국은 출발부터 북부는 중국, 남부는 일본의 식민지라는 역사를 조작하기 위하여 낙랑군 평양설과 임나일본부설을 철저히 교육하였다. 일제의 이런 민족말살과 식민교육이 제대로 극복되지 못하고 식민사학 카르텔에 의하여 식민사학 유풍의 역사교육으로 이어져 지금도 주인정신이 결여된 식민잔재 인식으로 역사와 사회현상을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을사늑약 후 6년제 소학교령에 의거한 학교명을 식민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양성을 위해 3~4년제 보통학교로 바꾸고 일본인 교사가 교육과정 편성과 학교운영을 하도록 하였는데, 이들에게 부여한 명칭이 교감이다. 정작 일본은 식민교육에서 사용하는 교감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교두라고 한다.

주인정신이 결여되어 교감 명칭을 사용해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교감 명칭을 바꾸자는 법률안이 제기되어도 국회의원들의 오도된 역사관으로 폐기된다. 주인정신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서 국가사회가 제대로 발전이 되고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 법체계를 갖추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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