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줄곧 회자되는 영화제목이다. 지난 2008년 2월 개봉한 이 영화에서는 1980년 미국 서부 한 시골, 총격전이 벌어진 끔찍한 현장에서 퇴역군인 르웰린 모스(조슈 브롤린)는 우연히 200만 달러가 들어 있는 가방을 손에 넣는다. 살인마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도 이 가방을 찾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뒤를 쫓는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까지 합세하면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목숨을 건 추격전이 시작된다.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조엘과 에단 코엔 형제가 감독한 이 영화는 제80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 주요 상을 휩쓸었다.
영화 제목만 보면 노인 문제를 다룬 영화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노인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노인이 등장하는 범죄 스릴러 영화다. 제목이 주는 강한 인상으로 노인 문제에 대명사처럼 회자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의 의미가 오늘날 노인 문제와 크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의 노인 비하 발언으로 어수선하다. 정치권은 연일 노인 비하 발언을 두고 정치 공방을 벌이고 있다.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청년 좌담회에서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젊은이와 똑같이 투표하느냐"며 `남은 수명`(여명 餘命)에 비례해 투표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라며 노인 비하 발언을 했다. 그는 자기 아들의 중학 시절 발언을 소개하는 형식을 빌려 노인과 청년들의 푯값이 똑같을 수 없다는 궤변을 편 것이다. 노인 비하 발언이 즉각 반발을 불렀으나 그는 "사과할 일이 아니다"라고 사과하기 전까지 우겼다. 그러다가 나흘 만에 공식 사과하고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사과했다.
지난 3일 김은경 위원장은 대한노인회 중앙회를 찾아 발언 취지를 설명하고 사과를 했지만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정신 차리라"며 김 위원장의 사진을 네 차례 쳤다. 김 회장은 `참을 수 없어` 천만 노인들을 대표해 `사진 따귀`를 때렸노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사과의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얼굴 사진을 때렸으나 과하다는 논란이 있다. "위원장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 상책일 것"이라는 말도 했다. 노인 비하 발언이 정치적 논란으로 확대되자 박광온 원내대표는 사과와 함께 대한노인회가 제기해 온 임플란트와 인공 눈물 등 관련 법안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국민의힘은 전국 경로당에 냉방비 10만 원씩을 일괄 지급하기로 정부와 협의했다고 밝혔다. 여야가 노인 표심 잡기에 경쟁적으로 나선 모습이다. 결코 바람직한 정치가 아니다.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의 분노는 지난 2월에도 있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도시 철도 무상 이용 연령을 70세로 상향 검토 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그 양반 무식한 사람, 지하철 무임승차 70세 상향은 위법행위"라며 분노했다. 그는 "무임 혜택을 주다가 안 주는 건, 그 연령대 노인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것"이라고 현실적 문제도 강조했다. 이어 "(노인 기준을)70세로 하려면 69세로 정년퇴직 연령을 높이든지, 돈을 주든지, 노인 일자리에 신경을 쓰든지 등 그런 여건을 만들어 놓고 논의해야 한다"며 "겉으로 젊어 보인다고 해서 노인 대책을 변경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노인 문제에 이토록 분노하고 대변하는 김 회장은 지난 2020년 10월 제18대 노인회장에 당선됐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마산 합포구에서 제14ㆍ15ㆍ16대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의 제목은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의 첫 구절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에서 가져온 것이다. 뜻은 `(세상이 많이 바뀌고 험악해지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게 변했거나 돌아가기 때문에) 노인이 살아갈 만한 나라가 아니다`에 가깝다. 이 구절에서 `노인`이란 `오래된 지혜를 가진 현명한 생각의 소유자`이다. 만약 노인의 경험과 지혜대로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게 흘러가는 사회라면 그곳에서 노인들은 대접받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지혜로운 노인이 예측한 대로 흐르지 않는다. 우연을 통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고, 누군가 선한 의도로 행한 일이 곧 악몽이 돼 찾아오며, 시시때때로 저지른 이유도 목적도 공감할 수 없는 범죄가 일어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매일 일어나는 곳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영화는 이러한 부조리한 세상의 이치를 매우 담담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작가 코맥 매카시가 89세 나이로 별세했다.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있을 때 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