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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서울 올림픽
88 서울 올림픽
  • 경남매일
  • 승인 2023.07.2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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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우리는 지금 중진국 정상에 왔다. 벽을 넘어 선진국 정상에 도전해야 한다. 안 그러면 썩는다. 어느 정상에서건 편히 노닐 수 없다는 세상의 깊은 이치를 깨닫자! 88 서울 올림픽 때 슬로건 중 하나가 `벽을 넘어서`였다. 인종, 이념을 넘어 인류가 대통합하자는 웅장한 구호(강령)이었다. 이 강령은 올림픽 정신이기도 했지만, 완고한 공산주의 벽을 허문 위대한 구호였다.

88 서울 올림픽이 소비에트 공화국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우리는 중진국으로 올라섰다. 큰소리친다고? 과장이라고? 모르는 소리.

88 서울 올림픽 다음 해, 부다페스트에 갔다. 세계청소년 육상선수권 대회 참석하러. 바로 한달 전, 소련이 막 무너졌을 때다. 택시를 잡아탔는데, 택시기사가 운전 내내 운전 조심은커녕 뒷좌석의 나를 돌아보며 말을 건다.

"한국의 인구는? 뭘로 먹고 사느냐? 무슨 돈으로 올림픽을 치렀나? 그 큰 잔치를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나?" 질문을 마구 퍼붓는다. 불안해 죽겠다. 운전대는 잡았지만 계속 뒤를 보고 말을 건다.

안 되겠다. 차를 세웠다. "기사 양반, 가까운 호텔로 갑시다." 결국 호텔 로비에서 한 시간 동안 한국 소개를 하고서야 풀려났다. 그들은 정말 진지하였다. 그냥 호기심으로 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듣도 보도 못한 아시아 한구석의 조그만 한국이 올림픽을 치렀다는 게 신기했고, 또 어쩌면 그렇게 멋지게 잘 해내는지, 그 솜씨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쇼크를 받은 것은 헝가리의 택시기사만이 아니었다, 세계인 모두가 놀라 자빠진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체육인은 자존심도 잠시 뒤로 미루고 이런 말을 하였다. "박 선생, 이제 우리는 한국에 졌어요." 올림픽 직후, 실제로 일본 국내에선 한국경계론이 널리 확산되었다. 한국이 곧 일본을 추월한다는 일부 여론도 있었다.

헝가리는 왕년의 대제국이었다. 20세기 초까지는 유럽을 호령하던 강국이었다. 유럽의 명문 합스부르크 왕가가 통치하던 뼈대 있는 나라.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도나우강, 그 위에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세체니 다리, 왕궁 등은 첫 방문객에게도 오래 뇌리에 남는 아름다운 절경이다. 강둑을 따라 산책하는 노부부의 행색은 다소 초라했지만,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있었다.

20세기 초까지도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나라, 산업은 세계 4대 기계 공업국이었다. 내가 평소 알던 동구권의 약소국이 아니었다. 택시기사지만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 한 번이라도 제국의 국민이 돼본 사람은 다르다. 보는 눈이 다르다. 눈높이가 다른 것이다.

유감이지만 우리에겐 그게 없다. 한 번도 제국 노릇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코리아가 해냈는데...우린 뭐냐? 지금 자기 처지와 나라 형편을 생각할 때 듣도 못한 한국의 부상, 그것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국의 발전상에 그는 경악하였고, 내 생각엔 세계인이 모두 까무라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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