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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이동병’이 퍼진다
남해 ‘이동병’이 퍼진다
  • 박성렬 기자
  • 승인 2014.04.17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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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렬 제2사회부 부국장(남해주재)
최근 남해에서 ‘이동병’(二東病)이라는 신조어가 나돌고 있다. 군민들은 술집에서 안줏거리로 혹은 몇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이야깃거리로 심심찮게 이동병을 화제 삼는다.

 이동병은 2개월 전에 치른 남해신협장 선거 이후 생겨났다고 한다. 갑자기 사람의 입에 회자되는 이 말은 ‘감투를 혼자 오래 차지하려고 욕심 부리다 불명예 퇴진하는 사람’을 이른다. 이 신조어가 나온 배경이 된 남해 이동면은 예부터 똑똑한 사람이 많이 난다고 알려져 왔다. 남해군에는 10개 읍ㆍ면에 5만여 명이 살고 있는 데 유독 이 지역에서 시쳇말로 ‘잘나가는 사람’이 많이 나오고 화제의 중심에 서는 사람 대부분이 이동면 출신인데서 ‘이동병’이 퍼지고 있다.

 지난 2월 18일에 치른 신협장 선거에서 이동면 출신 최모 후보는 이동신협장을 8년, 남해군 신협장을 8년 하고 난 후 3선에 나서 송모 젊은 후보한테 3대 7로 패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동면 출신 인물들을 들춰보며 끝 간 데 없이 ‘자리’를 탐했던 과거 인물들도 유사한 궤적을 그리며 사라져 갔다.

 이 지역의 터줏대감인 박모 국회의원은 4선을 한 후 5선에 나서 공천을 받으려고 애를 태우다 모 지역 보궐선거에서 옮겨 당선됐다. 박 의원은 목표를 달성하고 명예를 회복한 것도 잠시 돈봉투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또 하모 씨도 남해군수 재직 중에 중도에 그만 두고 국회의원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후 산림청장으로 임명됐다. 그래서 농식품부 제2차관을 했고 또 농수산물 유통공사 사장으로 있다가 다시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공천을 못 받았다. 그 후 경남도 지사를 준비하다 공천을 못 받아 중도 사퇴한 일도 있다.

 이미 고인이 됐지만 강모 전 군의원도 3선을 한 후 면장도 8년이나 했다. 그는 군의원 4선에 도전하다가 낙선한 후에 충격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쳤다. 또 한모 군의장도 군의원 2선을 하고 군의회 의장까지 했는데 또 도의원이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져 남해군 정가에 묘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동면은 지금 군수 후보에 박모 씨, 도의원 후보에 젊은 박모씨 두 사람이나 출마해 이동 사람들이 똑똑하다는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처럼 이동면에는 똑똑한 인재가 많다는 얘기는 남해 군내에서 지금도 인정을 받고 잇다.

 옛 선현들이 즐겨 읽던 명심보감에 세 가지를 멀리하면서 경계하라고 했다. ‘젊었을 때는 색을 경계하면서 멀리하고, 중년에는 싸워 이기려는 마음을 멀리하면서 경계하고, 늙어서는 노욕을 멀리하면서 경계하라’고 했다.

 벼슬을 할 만큼 했으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줄 알아야 하는데 노욕을 자제하지 않고 자기 혼자서 다 해먹으려다 큰 망신 당하고 평생을 쌓아 올린 명예에 먹칠하는 사람이 특히 이동면에 많아 ‘이동병’이 걸린 사람을 보고 혀를 차는 사람이 많다.

 비단 이동병이 남해군 이동면에만 속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4년 전에는 여당의 공천 혜택을 받아 도의원을 3선이나 한 김모 전 도의원도 4선을 하려다 공천을 못 받아 탈당하고 상대 적진에 합류한 적이 있어 선거 때마다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또 현재 이모 전 남해군 도의원이 군수 경선에서 경선 보이콧을 선언하고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선언을 하면서 남해 정가를 어수선하게 하고 있다.

 공직생활 40년에 5급 사무관으로 과장, 면장, 읍장으로 퇴직해 무소속으로 군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자 집권당에 즉시 입당해 군 의장, 도의원을 하고 군수까지 하려다 공천을 못 받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선언을 했는데 군민들은 이모 전 의원에게 어떤 평가를 할지 궁금하다.

 이모 후보는 경선에서 자신이 불리하자 경선이 불공정하다며 보이콧 하자 유명한 박모 전 국회의원 ‘명언’을 많은 사람들에게 떠올리게 했다.

 전국 어디에도 없는 병명이 남해 이동병인데 아름다운 마무리가 그 만큼 절실한 곳이 또한 남해이다. 욕심을 너무 부리면 민심이 돌아선다. 이동병에 걸리기 쉬운 환경은 주변에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보다 아부하고 부추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동병에 걸린 환자들은 민심을 거스리기 때문에 말년이 아름답지 못하다.

 언제까지 남해에 이동병이 번져갈지는 모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안 나갈 자리에 끝까지 나가 쭉정이가 되기 않기를 면민들은 바라고 있다. ‘박수칠 때 떠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많은 사람은 알고 있다. 특히 이동면 출신 인물들이 무대에서 집중 조명을 받을 때 떠나기가 너무 힘들어 대부분 마지막에 죽을 쑤었다.

 주민들이 지금 이동병을 한창 말하다 “그분 잘 물러났으면 지금쯤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을 텐데… ”라고 붙이는 끝말이 긴 여운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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