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이다 보니 당연히 팔은 안으로 굽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잘못된 감싸기가 얼마나 큰 사회문제를 일으키는지 모른다.
부모가 아는 내 아이는 부모가 보는 곳에서는 평범해 보이지만. 부모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학교에 불려가고 경찰서에서 만나 알게 되는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의 친구 부모 역시 나와 같이 내 아이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잘못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의 구호처럼 ‘나만 아니면 돼’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만 아니면 되는, 내 것, 내 자식만 챙기는 풍조가 만연하다 보니 아무리 내 자식을 잘 챙겨도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의 특징은 누구나 빠질 수 있으며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왕따, 학교폭력, 자살 등의 사회문제는 사회에 생긴 구멍이다. 누구나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이 함께 안전해야 사회적 문제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내 자녀가 친구를 살뜰히 챙길 수 있는 정서를 가지고 있어야 왕따의 문제가 없어지고,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하다는 교육이 이뤄져야 맞고 있는 친구를 보고 침묵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맞고 있는 친구를 보고 도와주지 않는 것이 생명존중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교육하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 하는 것이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라는 것을 교육해야 자살이라는 사회적 구멍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 사회에 생긴 구멍은 아무도 혼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구멍이다. 팔이 안으로만 굽어서는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다.
친구를 잘못 만난 내 자녀는 누군가의 친구이다. 친구를 잘못 만났다면 그 친구마저도 감싸야 내 자녀가 안전할 것이다.
안으로 굽는 팔 안에 오직 내 자녀와 내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팔 안에 내 자녀의 친구, 내 가족의 지인들 그리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회구성원들이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구멍은 없어질 것이다.
김민기의 ‘작은연못’의 가사가 떠오른다. ‘어느 더운 여름날 연못 속의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 오르고 그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는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무한경쟁의 사회, 가장 높은 학력의 평준화를 이루었지만 청년 백수 100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 살아남은 자가 가장 강한 자라고 가르치고 있는 우리 사회, 그리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이대로 가다가 우리 사회는 언젠가는 아무도 살 수 없게 되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그 두려움은 우리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건강한 두려움이어야 한다. 내가 속해 있는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 내 자녀, 내 가족만을 품을 팔을 가지고 있다면, 그 팔을 더 넓고 크게 벌여서 우리 사회를 안아야 하겠다. 우리는 공동체라는 이름의 또 다른 가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