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16:42 (일)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3.11.22 09: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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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5)
 11. 장발장 각색 만화책

 다시 6ㆍ25전쟁 시절로 돌아가 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생각이 난다. 당시 남과 북은 모두 진이 빠져 전쟁을 계속할 여유가 없었고 전선의 중간 지점인 판문점에서는 북한군과 유엔군이 휴전 협상이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북진 통일을 정책으로 세우고 있던 이승만 정부는 전국 학교나 거리에 그리고 벽에 휴전 반대 시위나 벽보를 붙이고 있는 때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릴 때 3년이면 무척이나 긴 세월이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전쟁을 지켜본 어린 나의 심정은 ‘전쟁이 이대로 끝나지 않으면 자라서 군인이 돼 전쟁터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그렇게 되면 전쟁터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해지고는 했다.

 그 당시 군대 입대하는 분들을 보면 부모, 형제와 친지들이 모여서 울고불고 야단이었다. 꼭 죽으러 가는 곳을 보내는 장면이었다.

 어떤 분은 검은 잉크를 마시고 X-레이를 찍어 내장들이 까맣게 나오게 해 일부러 환자로 위장하기도 했다.

 또 어떤 분들은 일부러 몸 한 곳을 불구로 만들어 버렸다. 전쟁터에 가서 죽느니 차라리 불구로 사는 게 나으니까 말이다. 전쟁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왜들 곳곳에서 휴전을 반대하는지 당시 나는 그런 사람이 오히려 이상해 보이곤 했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되든 휴전이 되든 상관없이 남쪽 자그만 지방 도시에는 만화책은 수시로 계속 유입되고 있었다.

 그 무렵 서점에서 국판 양장(두꺼운 표지) 그리고 모조지에 쪽수가 250쪽에서 300쪽 정도로 아주 제대로 된 만화책이 만들어져 판매가 됐다.

 그 만화책이 바로 김정파 선생님의 ‘아! 무정’이었다. 고급 양장으로 된 두꺼운 책으로는 아마도 제일 먼저일 것이다.

 이 만화책 ‘아! 무정’은 서양 소설 레미제라블 즉 장발장을 나름대로 각색한 만화책이었다.

 책을 펴면 한쪽에는 글이고 또 다른 페이지는 그림이었다. 그러니 만화라고 하기보다는 글과 만화가 어우러진 그림 소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화풍은 8등신의 완벽한 삽화체로 선이 거친 화풍이었다.

 내용으로는 초라한 주인공이 빵 한 조각 훔쳐먹고 18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다가 나와 또 교회에서 금 그릇을 훔치다 들킨 것이 생각나고 목사님이 도와준 것도 생각나고 결국 이 불쌍한 주인공이 시장이 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시장이면서도 어느 사람을 구하려 하수구에 들어가 사람을 엎고 나오기도 하는 그림이 있는 만화책이었다.

 이 책이 어떤 계기로 당시 내 손에 들려 졌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책을 보고 또 보고 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나는 그때 초등학교 저학년에 불가했기에 그 책의 많은 글을 다 읽고 소화하기에는 능력이 모자랄 때였다. 그래도 그림만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스스로도 신기하게 생각했다.

 김정파 선생님은 원래 순정 만화를 많이 그리신 분이었다. 그림 스타일은 깨끗한 선으로 키가 날씬한 주인공을 그리는 순정 그림이 아니시고 3~4등신의 만화체 화풍의 슬픈 내용을 담은 그런 순정 만화였다.

 1950년대 후반 이범기, 이재은, 엄희자등 날씬한 8등신에 얼굴이 예쁜 순정 만화체에 밀려 김정파 선생의 화풍 같은 순정 만화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김정파 선생은 생전에 한 번도 넉넉하게 살아 보지 못했고 결혼도 40살에 가까운 나이에 했기 때문에 자식도 늦둥이들이었다.

 어릴 적에는 작가 이름도 외우지 않고 본 8등신 삽화체로 그려져 있는 이 작품을 나는 성인이 돼 만화체만 그리시는 김정파 선생의 작품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그러나 어느 문서에서 이 작품이 김정파 선생님의 작품인 것을 확인했고 그 원작자를 알게 됐던 것이다.

 하여튼 ‘아! 무정’의 원작자가 사실은 누구의 작품이든 만화책 ‘아! 무정’은 존재했고 또 후에 재판도 나오기도 했다.

 한국 만화 황금기를 예시했던 이 작품은 어느 출판사에서 그리고 어느 분이 사장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로는 대단한 혁신적인 만화책 제작이었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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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생 2013-11-25 13:27:59
인생 만화경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연재가 되지 않았군요. 긍금합니다. 계속 나오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