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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 무형문화재 한량무 ‘자성의 목소리’
道 무형문화재 한량무 ‘자성의 목소리’
  • 박명권 기자
  • 승인 2013.05.28 22:0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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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권 서부지역본부장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란 연극, 무용, 음악, 공예 등의 기술처럼 구체적인 형체가 없는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큰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형문화재가 내부갈등으로 위기에 직면하고 명칭 논란까지 휩싸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1979년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한량무’가 지정 이후 30여 년 동안 내부갈등으로 심각한 내홍을 앓고 있다. 급기야 경남도로부터 지원금이 중단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한량무(閑良舞)’란 무언 무용극의 하나로 정조 없는 기생을 사이에 두고 한량과 스님이 싸움을 벌이는 내용으로 조선 시대의 퇴폐를 잘 풍자하고 있다. 이 춤은 조선 사대부 양반계급 사회의 영웅호걸 한량들이 해학적으로 창안해 관기들과 여흥을 즐겨 추던 춤이 대대로 전승돼 지난 1930년대 경남도 양산 권번에 정착됐다.

 양산 권번 평양 명기 김농주 사범으로부터 한량무 일체를 사사 받은 학산 김덕명 계승보유자가 후진 양성에 힘써오다 지난 1979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것이다.

 색시역과 승려역ㆍ주모역ㆍ별감역, 마당쇠 역, 상좌역, 악사역 또한 1989년 전승 계보와 함께 문화재인증서를 받았다.

 이렇듯 한량무는 조선조 양반계급 사회의 계층별 장기놀음 흥취를 종합한 무언극으로 우리 역사 속에서 정통문화 예술의 단면을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하고 고귀한 춤이다. 이러한 무형문화재가 내부갈등으로 지난달 1일 경남도로부터 1년간 지원금 중단이란 최고장을 받아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보조금 중단은 경남문화재위원회가 현지조사를 시행한 결과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보유자들은 경남 문화재보호 조례에 따라 공개행사와 후계자양성, 문화재 전승 등의 활동을 펼쳐야 하나 이러한 의무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량무의 계보와 유래에 대해서도 설전을 벌이고 있다. 한량무의 명칭 또한 ‘진주 한량무’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과 ‘양산 한량무’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무형문화재는 보유자가 1~2명인 것에 반해 한량무는 배역이 존재하는 춤의 특성상 보유자는 5명, 보유자 후보 1명, 전수조교 1명 등으로 지정돼 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이들 사이에는 내분이 발생하고 법정공방이 펼쳐지는 등 분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후대까지 보존ㆍ전승돼야 할 무형문화재가 수십 년 동안 진흙탕 속을 헤매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기본적인 활동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원금이 중단된 만큼 내부의 강도 높은 쇄신안 마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특히 예술적 가치 높은 한량무는 개인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며, 후손들의 것임을 우선해야 한다.

 관련 당국 또한 오랫동안 지속해 온 내부갈등을 산 넘어 불구경하듯 치부해 온 것에 대해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인들 또한 이를 자칫 자신들의 기득권인양 착각으로 일관한다면 외면 받을 것이 자명하며, 관련 당국 또한 이를 더는 지체하거나 묵인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속해서 보존ㆍ전승돼야 할 무형문화재가 기득권싸움으로 변질하는 것에 대해 도민들 또한 걱정을 앞세우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무형문화재란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오랜 세월의 역사적 가치와 각고의 노력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이처럼 역사와 예술적 가치가 높은 우리 모두의 유산인 한량무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각자의 뼈를 깎는 자성과 지혜로움 또한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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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란 2013-07-05 15:10:08
무형문화재는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을 지정을 합니다.김덕명 보유자가 양산에서 한량무를 배웠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1996년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전승이 되었던 한량무를 조사한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기록을 보면 수원재인청 이동안 선생이 부산 동래 김덕명에게 한량무를 기초부터 자세하게 가르쳤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박옥란 2013-07-05 14:51:59
상식적으로 양산권번에 정착하여 양산 인물들이 전승을 한 한량무가 어찌 양산 지역 문화재가 아니되고 진주 지역 문화재가 되었을까요. 양산한량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량역 보유자와 후보자 그리고 진주시청 담당자 뿐 그 기록은 어디에도 없으며 우리나라 전통무용사 모든 책과 논문과 학술지와 전문학자들이 모두 한량무는 진주교방에서 전승된 춤으로 진주권번 강귀례가 복원하여 전승을 했다 라고 기록하고 말하고 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