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17:55 (일)
종교와 정치의 찰떡궁합
종교와 정치의 찰떡궁합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0.11.09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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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와 종교는 궁합이 맞지 않으면서도 항상 같은 행보를 걸어왔다. 서양 중세시대의 역사는 교황과 황제의 권력 다툼이 큰 페이지를 철했다. 교황과 황제의 권력 다툼에서 교황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이 ‘카노사의 굴욕’이고, 프랑스 왕과 교황의 힘겨루기에서 왕이 이긴 사건이 ‘아비뇽 유수(幽囚)’다. 이를 보면 별개인 성(聖)과 속(俗)이 서로 겨루면서 힘의 부침이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의 직영사찰 전환 문제에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이 개입돼 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명진 스님은 일요 법회에서 “봉은사 직영 문제는 종단과 봉은사 간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일요 법회는 교회로 말하면 주일 예배와 같은 주례행사인데, 설법을 하는 자리에서 정치문제를 언급했을 뿐 아니라 그것도 대통령과 그 형을 걸고 넘어졌으니 가히 종교와 신앙의 찰떡궁합이다. 그는 대통령과 그 형님의 개입 문제를 언급한 것과 관련해 “명예훼손으로 고발해도 좋다”고 강조했다. 종교인이 법회나 예배에서 행한 말에 면책특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뉘앙스를 풍긴다. 명진 스님은 또한 이날 법회에서 자승 총무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조계종 총무원장이 장로 정치인에 불과한 대통령의 하수인이 된 것 아니냐”며 “영포회 불교지부장 쯤 되는 자승 원장이 퇴진해야 한다”고 총무원장이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이 정도 되면 큰 사찰의 주지가 승적까지 포기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건드렸다.

 명진 스님은 왜 종교인이 일반인으로부터 존경을 받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그의 입에서 정치나 현실의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지는 않는다. 거친 세상사에 시달릴 때 설법을 듣거나 설교를 들으면 고단한 삶을 잠시 쉴 수 있다. 스님이나 목사의 입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듣고 골머리를 더 썩을 것 같으면 절이나 교회를 찾을 이유가 없다.

 법정 스님이 불교 신자나 일반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은 것은 단순히 무소유의 삶 때문만은 아니다. 법정 스님의 청빈한 삶이 이 시대에 청량한 향기를 발했지만 일반인은 따라하기가 힘들었다. 현대사회에서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스님의 깊은 내면의 울림이 삶을 통해 흘러나오니 존경이 일어나고 이 시대의 삶의 표상으로 삼은 것이다. 목사가 강단에서 민감한 정치 사안을 언급해 성도를 혼란케 하면 삯꾼이다. 예배 설교에서 던져주는 말씀은 한 주간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혹 말씀이 마음을 휘저으면 반성하고 바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속세의 먼지를 덮어쓰고 사찰을 찾은 신도에게 정치외압설 공방을 설파하면 번민에 더 쌓이지 않을까. 인생의 괴로움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이 절이나 교회에서 조차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더 고통을 안아야 한다면 그곳에 뭐하러 가야하나. 법정 스님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하였어도, 중생들은 앞 다투어 가지려 하지만 그래도 무소유의 정신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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