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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考試)제도 폐지는 시대적 흐름
고시(考試)제도 폐지는 시대적 흐름
  • 경남매일
  • 승인 2010.09.1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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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상 칼럼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미국 조지메이슨대학의 고든 털럭(Tullock) 교수는 공무원 선발을 위해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을 고려해 행정고시는 아주 비효율적인 제도라고 주장한다. 그는 젊은 시절에 미(美) 국무부 관리로 중국과 한국에 근무했다. 두 나라의 역사를 잘 아는 그는 시험제도의 사회적 비용을 연구해 `공공선택료(public choice)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했다.

 지난해 치러진 행정고시에 총 1만 82명이 응시해 겨우 244명이 합격했다. 평균 44대 1의 경쟁률이다. 각종 고시 준비생이 10만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고시(考試)에 수차례 낙방하면 `폐인`으로 전락되기고 한다. 더구나 대학에서 전공 아닌 고시 공부를 하는 학생들로 도서관이 넘쳐난다.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를 공부하느라 청춘을 허비하는 수 많은 고시환자를 양산해 내는 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낭비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나온 것이 `전문가 특별 채용` 제도이다.

 그런데 최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혜 채용 의혹이 터지면서 현대판 `음서(蔭敍) 논란이 일고 있다. 음서(蔭敍)란 높은 벼슬아치의 자제들을 과거(시험) 없이 추천만으로 관리로 임명하는 제도이다. 이런 제도가 이번에 유명환 장관의 딸 특채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공무원을 채용하는 목적은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정부 정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데는 전문가 채용방식이 행정고시 보다 더 우월하다. 행정고시는 합격만을 위한 공부이지 공무원이 실제로 일선에서 필요한 지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지난 98년 한ㆍ일 어업협정 과정에서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서 쌍끌이 어업 실태를 누락시켜 국가의 이익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던 것은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결여 때문이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공무원 선발을 위해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을 고려하면 행정고시는 아주 비효율적인 제도라고 미국 조지메이슨대학의 고든 털럭 교수는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명환 장관 딸 특혜 채용에서 보았듯이 전문가 채용 방식은 행정고시에 비해 투명성과 공정성이 떨어질 위험이 매우 높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를 방지할 제도적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공정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는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변화와 경쟁을 추구하는 공무원 사회에서는 행정고시를 비롯한 각종 고시제도 폐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에 변화하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고시제도는 건국 이후부터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고등고시와 보통고시로 나누어 실시하다가 고등고시를 행정고시, 사법시험ㆍ외무고시로 이름만 바꾸었다. 고등고시는 일제가 실시한 제도이다. 그후 60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유지돼 왔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런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내년부터 2017년까지 시차를 두고 단계적으로 폐지할 모양이다. 행정고시는 내년부터 `5급 공채`로 이름이 바뀌고 5급 공무원의 30%는 민간 전문가로 선발한다.

 사법시험은 2017년에 완전히 폐지되고 로스쿨(법학전문대학) 졸업자만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외무고시도 2013년 폐지돼 1년제 특수대학원인 외교 아카데미를 통해 신규 외교관을 선발할 모양이다. 문제는 이런 선발 방식이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별로 쓸모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 제도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100% 확보돼야 한다.

 사회 일각에서는 유명환 장관의 딸만 특혜를 받았겠느냐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행정안전부는 지금까지 특채로 임용된 공직자에 대한 감사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최근 교육계에서도 불공정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6월 실시된 서울시내 모 여고 수학경시 대회에서 이 학교 교무처장의 딸 A양(고3)의 성적이 부풀러져 수상자가 바뀌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사실 여부를 조사중이라고 한다.  시대가 변하면 법과 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 앞서 국민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잘 살아야 국민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이 올라 설려면 무엇보다도 공정한 사회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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