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분노
  • 김루어
  • 승인 2013.07.11 22:09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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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루어
 아무런 잘못 없이 남에게 공격받는 황당한 경우가 있다. 이른바 봉변이다. 내가 현재 그렇게 당하고 있다. 분노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분노는 불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분노를 식혀야 할 것 같았다. 불의 상극, 바다로 가기로 하고 아침에 집을 나섰다. 장마가 끝난 탓일까, 날씨가 뜨거워서 양산을 펴야했다. 시외버스정류장에서 남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안에는 승객이 몇 명 되지 않았는데, 열기 때문인지, 모두들 차창커튼을 내리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있었다.
 바다로 가면서, 내가 무얼 잘못했기에 공격을 받아야 하는지, 내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았다. 성년기에 접어 들 때까진 부모보호아래 있어서 세상과의 접촉이 없다시피 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겁이 많아, 일탈이라고는 모르는 얌전한 소녀였다. 친구도 별로 없었다. 책만 읽었다. 책이 내 세계였다. 그 안에서 놀고, 그 안에서 꿈꾸었다. 유신시대에 청년기를 보냈다. 어두운 시대 탓이었을까, 아니면, 청년기 특유의 협기(俠氣)때문이었을까. 그 무렵, 내 독서 범위가 문학류에서 사회과학류로 확대되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한때, 로자 룩셈부르크(Roża Luksemburg)나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를 동경하여 책상 앞에 그네들 사진을 붙여 놓고 당신들처럼 살고 싶다, 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안가 나는 그네들 사진들을 떼어 버렸다. 왜냐하면, 나는 최소한 나 자신을 응시할 줄 아는 정도의 수분(守分)능력은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나는 그네들 같은 용기도 열정도 신념도 없었다. 하지만 이때의 내 수분은 부채가 되어 지금도 나를 부끄럽게 할 때가 있다, 이런 저런 경로로 내 동년배들이 치른 희생을 우연히 듣기라도 하면.
 남해군에서 상주 바닷가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날씨는 더 뜨거워졌다. 돌이켜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돌 한 번 던지지 못하고 구호 한 번 외치지 못하고 유신시대를 보낸 내 청춘이. 하지만, 그 때 나는,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서였다, 고. 그때,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비문(碑文)같은 시(詩), 각혈(咯血)같은 산문(散文)을. 하지만 나는, 더 문학공부를, 더 대학을 다닐 수가 없었다. 급격하게 변한 집안 사정 때문에. 그래도, 꿈은 가슴에 품은 채 사회로 나갔다.
 버스에서 내려 걸었다. 땀이 비 오듯 했다. 내 사업도 초기는 순탄치 못했다. 땀을 많이 흘렸다. 그러나 몇 번 고비를 넘기자 중산층에 편입될 수 있었다,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원상 복귀한 셈이었다. 그러나, 꿈에서는 멀어졌다. 삶이라는 현실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변명해본다. 아니, 꿈이 변했다고 말하는 게 정직하겠다. 돈맛은 그만큼 달콤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커졌다. 하지만, 맹서하건데 정직하게 사업을 확장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잃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ㅡ남을 믿은 탓, 아니, 수분하지 못한 탓이라는 게 옳은 표현이 되겠다.
 내 탓으로 돌렸다, 모든 것을.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믿는데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재산을 잃어도 갈 곳: 문학, 이. 긴 세월 거기서 떠나 있었지만 아주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 바다가 있었다. 나는 바다 앞에 섰다.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왔다고 한다. 몇 년의 방황 끝에, 바다 앞에 서듯, 나는 문학 앞에 다시 섰다, 국수로 연명해도 좋다는 각오로.
   나는 바다 앞에 서 있다. 나는 문학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내 남은 삶을 걸 각오로. 그런데, 여기서 이유 없이, 내 잘못 없이, 생면부지의 인물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 분수를 안다는 것ㅡ이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지켜야 할 미덕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자체를 모르는 인간군이 있다. 후흑(厚黑)의 무리들이다. 후흑이란 후안(厚顔)과 흑심(黑心)의 합성 약어로 낯가죽이 두껍고 마음이 검은 인간을 말한다. 승냥이의 심장과 늑대의 발톱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일상과 삶을 흔들고, 심지어는, 파괴마저 서슴지 않는다.
 이들은 실력으로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 실력이 없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간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한다고, 후흑개념의 창안자인 이종오(李宗吾)는 중국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하여 증명해냈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무리들의 발호가 여러 분야에서 목도된다. 일구이언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후안, 문어발 영역확장을 당연시 하는 재벌들의 흑심, 몰지각한 학자들의 표절, 증권시장에서의 주가조작, 스포츠에서의 승부조작, 드물지 않은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 최근에는 인터넷순위 조작에 이르기까지.
 이들에게는 수치감이 없다. 낯가죽이 두껍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양심이 없다. 마음이 검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불법과 불의는 문제 되지 않는다, 자신의 잇속만 있을 뿐. 법망은 속이거나 피하기만 하면 된다. 이들의 먹잇감은 땀 흘리고, 노력하는 이들의 꿈의 열매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면 그러려니 한다. 나는 바다 앞에 서있다. 이 세상에 가장 많고 가장 순한 것이 물이다, 마치 보통사람들처럼. 그러나,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순한 물도 바람이 자신을 흔들면 그 강도만큼 분노하여 물결로, 파도로 일어선다. 우리는 파도처럼 이들에게 분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늑대와 승냥이의 놀이터가 되고 말 것이다.
시인 김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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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준 2013-07-12 00:30:18
이제 막 들어와 이 글을 대하고, 하아! 여기 살아 숨쉬는 한 사람의 시인을 만나게 되는구나 하고 감동하게 되었다. 살아 있음. 참으로 오랫만에 생명의 활화산 같은 生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오늘은 정녕 잊을 수 없는 기쁨의 날이다. 첫 줄을 읽을때는 몰랐는데 내려 갈수록 감동하면서, 또한 스스로에게 나는 부끄러운 사람이야 하고 자책하게 되었으니 지금 나는 새로운 성장통을 앓게 될것이 분명하다.

이현준 2013-07-12 00:38:02
내가 얼마나 가증스럽게 살아왔는가를 늬우치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고쳐 새로운 모습으로 살것을 다짐하게 되었으니 오늘 시인은 무심히 살아가는 내게 큰 채찍을 준 것이다. 감사한 마음이다. 내 생각과 내 사는 모습과과, 또는 내 생각과 배치되는 상황이 내 앞에 나타날때 분노하게 되는데 지나고 보면 참 어리석게도 감정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나를 보게 된다.

이현준 2013-07-12 00:44:25
내 개인의 삶속에 뿐만 아이라 우리들 주변, 사회적 상황들이 가슴속에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속앓이로 치부 할것이 아니라, 시류에 편승하는 못난이가 아니라 목소리로, 글로 분연히 분노하여야 하리라 다짐해 본다. 오늘 시인은 바다를 바라보며 분노를 파도처럼 분연한 마음, 행동을 보려했다. 읽고 또 읽으며 스스로를 강하게 하리라 다짐해 본다.

이현준 2013-07-12 00:54:58
70년대 D일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시론)을 쓰셨던 김성식선생님이 새삼 떠 오른다. 나중에'쓴소리 곧은 소리'라는 책으로 나와 내 서고에 꽂혀 가끔 펼쳐 읽고 있다. 예전 참으로 암울했던 사회적 상황에서 꿋꿋하게 정론의 노조를 펴 다른 기사를 보기 위하여가 아니라 그 칼럼을 읽기 위해 나는 열심히 사서 읽은 기억이 있다. 큰 바위언덕처럼 떡버틴 사회에 김선생님께선 분노하는 지성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신것으로 믿는다.

이현준 2013-07-12 01:01:09
오늘 시인의 글을 읽으면서 이 지면을 만든 '경남매일'신문사는 큰 용기로 이 사회의 등불의 역할이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시인이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를 보며 느끼고 말한 것이 메아리가 많이 일어나기를 희망해 본다. 개인의 용기는 언론이 용기를 부여하고 끌어 당기는 역할을 해야 마땅하리라 생각한다. 이것이 언론의 책무라는 생각이다.
다시한번 시인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