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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진 선생 선양사업 시급
윤현진 선생 선양사업 시급
  • 승인 2008.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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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 중에는 양산 출신도 여럿 있다.

이중 가장 두각을 보였던 인물은 임시정부에서 재무차관을 지냈던 상북면 소토리 출생의 우산(右山) 윤현진(尹顯振·1892.9.16~1921.9.17) 선생이다.

구국의 일념으로 건강도 돌보지 않고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불과 30세의 젊은 나이에 일생을 마감할 만큼 항일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선생은 결국 병을 얻어 조국 광복을 못보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당시 일제 신문이 ‘형극(荊棘)의 배일(排日) 수완가 윤현진의 사(死)’라는 제목 하에 그의 사망은 임시정부의 패망이라고 논평할 정도였다니 선생의 위치를 짐작할 만하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으며, 상하이 정안사 외인묘지에 있던 유해는 1995년 6월 23일 대전 국립묘지에 봉환 안장됐다.

필자는 지난해 6월 양산문화원 주관으로 지역의 청소년 50여명과 함께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마련된 선생의 묘지를 참배하고 가져간 선생의 생가 터 흙으로 고향산천에 대한 향수에 목말라 있을 선생의 넋을 달랜 바 있다.

이렇듯 우리 양산의 큰 자랑임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는 제대로 된 사업이 없는 실정이니 안타깝다.

지난 1959년 춘추원에 세워진 기념비만으로는 선생의 조국사랑을 기리고 널리 알리는데 부족하다.

선양사업이 지지부진하다보니 선생을 부산 출신으로 잘못 알려지는 경우도 있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중에는 선생의 호가 잘못 기재되는 등의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이는 선양사업의 시급성을 잘 알려주는 사례라 하겠다.

양산이 낳은 애국지사로서의 이름과 그 높은 뜻을 선양하기 위해서는 생가복원을 비롯해 그를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조속히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한 사업은 시민과 학생들에게 선생의 애국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 산교육장이 될 것이며, 양산의 소중한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도 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인주 양산시의원(동면, 상·하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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