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9:52 (토)
욕망의 전차 세우는 꽃을 보다
욕망의 전차 세우는 꽃을 보다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3.27 2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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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⑬
이문재 시인 '봄날'
바쁜 일상 멈추는 꽃의 유혹
사진 찍어 급히 배달하는 마음
이문재 시인
이문재 시인

길가다 핀 꽃 앞에 멈춰서서 사진을 찍어서 누군가에게 보내본 적이 있는가? 이 경험은 아마도 흔할 것이다. 꽃 앞에서 이성을 잃는다. 메말랐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없는 사랑도 불러내고 싶다. 소설을 쓰고 싶다. 설레고 싶은 것이다. 봄의 생동 앞에서 메마름이 설 자리가 없다.

봄날의 꽃은 사람을 멈춰서게 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저절로 발걸음을 멈춘다. 한참을 들여다 본다. 때로는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성급하게 찍는다. 구도는 모르겠고 일단 먼저 찍는 것이 급하다. 빨리 찍지 않으면 이 순간을 누가 낚아채 갈 것 같다. 급한 배달을 하듯이 찍어서 감상할 겨를도 없이 사진을 전송한다. 그 순간에 떠올려진 누군가에게 보낸다. 그 누군가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이 순간 마음이 급하다.

목련꽃은 봉오리가 올라오면 어두웠던 세상에 촛불을 밝히듯이 환하다. 아기의 뽀얀 볼살이, 하얀 달이 두둥실 떠오른다. 목련꽃이 피고 있는 순간을 접한 사람들은 환하고 맑은 생동의 정념들이 마구 가슴으로 밀려 들어와 정신 줄을 살짝 놓는 것이 아닐까.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꽃 배달이 왔다. 길 가다가 목련이 예뻐서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문재의 '봄날'이라는 시에서 바쁜 일상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결국 아름다움이고 봄의 생기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욕망의 전차가 브레이크 장치 없이 달린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봄날 백목련이 피는 한 우리는 브레이크를 순간순간 밟을 것이다. 정신없이 달리다가 아차하고 정신을 차릴 것이다. 목련이 환하게 맑은 순수의 빛을 던지는 한, 걱정을 잠시 내려놓아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안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마음이 달리는 욕망의 전차를 한 번씩 멈추게 할 것이다.

욕망의 전차를 멈추게 하는 것은 아주 큰 것이 아니라 봄날에 피는 꽃송이들이다. 당신 안으로 밀고 들어온 꽃으로 마음이 흔들리고 누군가가 생각났다면 아직 당신은 욕망의 브레이크를 밟을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목련 나무 아래서 수도승처럼 멈춰 섰다면 당신은 이미 세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기운이 당신도 모르게 밖으로 뿜어져 세상을 비출 것이다. 당신도 모른다. 당신의 주변이 왜 밝아졌는지 모를 것이다. 왜인지는 묻지 말라.

봄날

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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