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4:41 (토)
거제·남해의 봄맛 병아리
거제·남해의 봄맛 병아리
  • 경남매일
  • 승인 2024.03.2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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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거제·남해의 봄은 병아리로 칭하는 사백어(死白魚)로 시작된다.

거제·남해 사람들은 하천 길목에 그물을 설치하고 불빛으로 사백어를 유혹한다.

사백어는 낮에는 하천 바닥으로 가라앉아서 밤에 불빛을 이용해야 잡기가 수월하다. 물때에 따라 어획량은 달라지는데 5~10물 때에 주로 잡힌다. 사백어 자체적인 힘보다는 밀물 때에 같이 하천으로 휩쓸려 온다고 한다.

거제·남해 바닷가 사람들은 봄꽃이 필 때쯤 바다 하천에서 건져낸 파닥거리는 사백어 맛을 봐야 봄이 오는 줄 안다. 입안에서 톡톡 튀는 사백어는 우물우물 혀 놀림을 통해 자극적인 봄의 식감으로 느낀다.

사백어(死白魚)는 바다에서 살다 3·4월 알을 낳기 위해 하천을 거슬러 오는데, 이때 연안 하천에서 주로 잡힌다. 본래 1년생 소형종으로 다 자라면 몸체가 5~6㎝로 된다. 다른 어종의 새끼가 아닌가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사백어는 망둥어과에 속한 하나의 종이다.

살아있을 땐 속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몸체인데, 피부 색소포 중 황색 적색이 다른 어류에 비해 적게 함유돼서다. 죽으면 하얗게 되는데 자율신경과 호르몬의 제어를 받지 않아 가장 기본색인 흰색만 남게 된다.

이번 달 초부터 다음 달 말까지 한 달 반 정도의 짧은 기간에만 먹을 수 있고, 잡히는 곳도 거제 남해 등 몇 군데로 한정돼 있다. 이때가 아니면 또 내년 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사백어 맛을 더욱 특별히 만든다. 옛날 거제·남해 사람들은 봄볕이 드리우는 3월이 되면 아주머니들이 양철동이 가득 사백어를 담아 이고 팔러 다녔다고 한다.

"병아리 사이소!" 하는 소리에 거제 사람들은 어느새 반갑게 달려가 사백어 한 대접을 샀다고 한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사백어를 한 사발 사서 텃밭에 있던 잔 파를 뽑아다 숭숭 썰어 넣고 계란을 부드럽게 풀어 넣은 사백어탕을 끓여 숙취를 풀었다고 한다. 사백어 철이 되면 주로 거제 둔덕·동부·남부면 일대 식당에서는 '사백어 개시'라는 안내표지가 붙는다.

사백어는 워낙 깨끗한 물에서 살아서 물에 슬렁슬렁 헹구면 손질이 끝난다. 식당에서는 사백어 요리를 주로 코스로 내놓는데 회무침·전·탕 순이다. 사백어를 산 채로 새콤달콤한 양념을 끼얹어 먹는 회무침이 있는데, 풋풋한 향내 풍기는 잘게 썬 미나리와 냉이·봄 나물류와 채 썬 배와 함께 뚜껑을 열면 사백어 무리가 팔딱거리며 그릇 밖으로 튀어 오르기도 한다. 초장을 뒤집어쓴 사백어는 몸을 비비적거리며 야채와 고루 섞이는데 입속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빨리 그 움직임이 둔해지고 풀냄새에 섞이고 새콤달콤한 초장과 어우러져 상큼한 맛이 입안을 호사스럽게 한다. 먹다 남은 사백어는 주방으로 가져가 잔파·계란·밀가루와 버무려 고소한 사백어전이 되어 나온다.

사백어 전은 달큰하게 익은 파 향과 함께 하얗게 익은 사백어가 부서지며 고소하고 진한 맛이 난다. 계란을 푼 사백어탕은 뽀얀 국물에 하얀 사백어와 새파란 파가 들어가 있어 시각을 자극하면서 시원하고 깊은 육수 맛이 난다. 사백어는 가늘고 부드러워 씹지 않아 목 안으로 잘 넘어간다. 사백어는 비린 맛이 별로 없고 담백하고 소화가 잘돼 애·어른·노인 할 것 없이 다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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