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20:12 (토)
정이천의 사물잠 소고
정이천의 사물잠 소고
  • 경남매일
  • 승인 2024.03.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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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4·10 총선정국이 전공의 사태와 맞물려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연일 매스컴이 쏟아내는 뉴스는 정제되지 않은 비방의 성찬으로 가득하다. 권력에 병든 정치꾼들은 기득권의 고수와 잃은 권력의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며 복수혈전을 계속하고 있다. 모두가 제 밑은 깨끗한데 상대방의 밑은 구리다고 맹비난한다. 정책 대결이 실종된 용호상박의 권력 싸움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최후의 승자와 패자는 4월 10일 자정이 되면 결판날 것이다. 그러나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의 치졸한 행태를 보면 누가 이기고 지든 도진개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입만 열면 우국지사 받들듯 들먹이는 국민은 단지 소리말로서의 '궁민'에 불과할 따름이다. 오직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정치는 거죽만 뒤집어쓴 채 빛 좋은 개살구 신세로 전락했다. 역발산기개세로 약속한 공약(公約)은 사탕발림 공염불로 끝나기 일쑤다. 선거전이 가열되니 실현 가능성 1도 없는 뜬구름 잡는 공약(空約)들이 난무하고, 전 정권과 현 정부의 실정폭로에 사생결단이다.

확실한 증거도 없는 카더라 식 비방전의 가열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지역구에 곁다리로 붙은 해괴한 이름의 비례위성정당은 권력바라기들의 각축장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최악인 상황에서 신성한(?) 주권 행사가 썩 내키지 않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그러나 어쩌랴. 권력이란 예나 지금이나 피도 눈물도 없는 아귀다툼이니 이런 때일수록 자신을 되돌아보는 마음공부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에 <심경(心經)>의 '비례사물잠(非禮四勿箴)' 잠언을 상고해 본다. <심경>은 중국 송나라 유학자이자 정치가인 진덕수(眞德秀)가 선진유학자들의 여러 경전과 주돈이, 정이천, 주희 등 성리학자들의 글을 발췌·인용해 펴냈다.

<심경>은 갈등과 대립으로 혼탁해진 세상에서 꼭 한번 읽어봐야 할 동양고전이다. 진덕수의 <심경>에 황돈, 정민정, 정이천 등이 주석(註釋)을 달아 <심경주부(心經註附)>를 썼다. 조선시대에는 주자와 여조겸의 <근사록(近思錄)>과 함께 <심경주부>를 유교의 도를 실천하는 교본으로 삼았다. 특히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양명학파, 실학파 등 여러 학파의 심경해설서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대표적인 저서로 퇴계 이황과 이함평의<심경강록>, 우암 송시열의<심경석의>, 성호 이익의<심경질서>, 다산 정약용의<심경밀험>등이 있으며 그 밖에 33편의 주와 해설서들이 있을 만큼 심경 연구에 몰두했다.

송나라 도학자이자 형 정명도와 더불어 성리학과 양명학의 원류인 정이천(정이)이 쓴 <심경주부>에 실린 '사물잠(四勿箴)'의 내용을 살펴보자. 정이천은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사물잠을 인용해 부연 설명했다. "공자의 제자 안연(정자)이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공부인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조목을 물었다. 이에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비례물시非禮勿視),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비례물청非禮勿聽),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비례물언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비례물동非禮勿動)'고 했다.

이 네 가지는 몸의 작용으로 안으로부터 나와 밖으로 대응하는 것이니 밖을 제어하는 것이 그 안을 기르는 방법이다. 정이천은 후학들이 이를 명심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잠언(箴言)을 지어 스스로 경계한다고 했다. 그는 사물잠의 '시잠(視箴)'에서 '사물이 내 눈 앞을 가리면 마음을 옮겨가니 밖에서 제어하여 그 안을 편안하게 한다.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공부가 오래되면 진실하게 된다.'고 했다.

'청잠(聽箴)'에서는 '인간이 가진 떳떳한 도리는 천성에 근거하니 앎이 사물에 유혹되어 변화되면 그 바름을 잃는다. 사특함을 막고 진실을 보존하여 예가 아니면 듣지 말라'고 했다. '언잠(言箴)'에서는 '길흉의 영욕은 모두 말이 불러오는 것이다. 지나치게 소홀히 하면 허탄하게 되고, 지나치게 번잡하면 지루하게 된다. 자기가 함부로 하면 남도 거스르게 되며, 나가는 말이 어그러지면 들어오는 말도 어긋난다. 법도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고 했다.

'동잠(動箴)'에서는 '뜻있는 선비는 행하기에 힘쓰니 행동할 때 자신의 뜻을 지킨다. 이치를 따르면 여유롭고 욕망을 좇으면 위태롭다. 급하고 어려운 때일수록 잘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스스로를 지켜라. 이것이 익숙해져 본성과 하나가 되면 성현과 같은 곳으로 귀일하리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금과옥조(金科玉條)와도 같은 마음공부의 실천 덕목이다.

프로파간다로 위장한 후안무치의 위선이 판치는 가운데 옳고 그름의 판단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나와 내 편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극단적 이기주의 세상. 자가당착에 빠진 삿된 마음을 잠시 비우고 '사물잠'에서 경계한 시·청·언·동의 잠언을 되새겨보자.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와 실존적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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