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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품고 슬퍼하다
칼을 품고 슬퍼하다
  • 경남매일
  • 승인 2024.03.2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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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헌 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칼을 품고 슬퍼하다>는 이상훈 작가의 사명대사 일대기를 다룬 책의 제목이다. 품을 포(抱), 검 검(劍), 슬플 비(悲), 포검비(抱劍悲)는 사명대사의 시문 등이 수록된 <사명집(四溟集)>에 나온다. 사명대사는 살생을 하면 안되는 스님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당리당략을 위한 파당정치로 전쟁준비가 안 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을 수령들은 도망을 가고, 나라를 지켜야 할 선조는 의주로 달아나 죄없는 백성들만 무참히 살해됐다. 이런 현실에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칼을 들 수밖에 없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 '포검비'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상훈 작가는 첫 에세이 시집 <고향생각>이 20만 부 넘게 팔리면서 일찌감치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첫 소설 <한복 입은 남자>는 베스트셀러였을 뿐 아니라 글로벌 OTT 드라마로 제작중인 데다 곧 뮤지컬로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최인호의 역사소설 처럼 역사사실을 바탕으로 픽션을 가미하여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끝까지 읽게 만든 것이 <칼을 품고 슬퍼하다>는 역사소설이다. 쉽게 쓰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영상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쇼 비디오 자키', '유머 일번지', '좋은 세상 만들기' 등을 제작한 방송국 스타 PD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복입은 남자', '제명공주', '김의 나라',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 공주' 등이 베스트셀러로 최인호 역사소설의 맥을 잇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작가는 외가가 있는 밀양시 무안면의 사명대사 표충비각에서 어릴 때 많이 놀았다고 한다. 표충비각은 나라에 큰 일이 있으려면 땀이 흐르는 것으로 유명한 비각이다. 이 비각은 영조 때 사명대사의 나라를 구한 충절을 기리기 위해 사명대사의 고향에 세운 것이다. 필자도 9대조의 성함이 이 비에 있어서 성찰의 시간을 갖기 위하여 이곳을 지나면 들린다. 표충비각을 세울 때 심은 향나무가 웅장하게 녹색우산을 펼쳐 놓은 듯 있는데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작가는 어릴 때 사명대사는 큰 도술을 부리고 신출귀몰 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알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은 사명대사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가 일본의 사이메이 천왕 <제명공주> 역사소설 자료를 찾기위해 일본에 6개월 이상 머물때 사명대사의 자료가 일본에 많이 있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자료를 찾는데 도움을 주었던 교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사명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주면서 일본에서는 살아있는 부처 즉 생불이라고 하면서 설보화상이라는 이름으로 숭상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명대사가 어떤 분이길래 일본에서 이렇게 추앙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한국에 와서 조선왕조실록과 사명집, 석장비문(石藏碑文), 사명대사 관련 학술 연구물 등 관련 자료를 다 뒤졌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사명대사라는 분은 육지 지형을 잘아는 승병들이 육상보급로를 차단한 공적은 이순신 장군의 해상 차단만큼 값지고 당대 조선인들의 지극한 존경을 받은 영웅이었다는 것을 자료를 통해서 알았다고 한다.

왜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를 움츠러들게 한 "그대 목이 조선의 보배"라는 일갈처럼 사명의 활약상은 종횡무진 눈부신 것이었다. 가토는 존경하는 사명대사와 나눈 서간문을 구마모토현에 있는 사찰 혼묘지에 보관하였다. 그 어떤 전투의 승리보다 값진 것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 1,500 여명을 송환해 온 것이다. 이 조선인 포로들에게 사명대사는 살아있는 부처였다. 조선의 권력자들이 외면해 온 조선인 포로들을 위해 사명은 거침없이 적의 소굴로 들어갔다.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사명에게 글 한 줄을 얻기 위해 줄을 서고, 사명의 가르침을 받으려 머리를 조아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명대사의 인품에 감복하여 생불이라고 하면서 자기 아들을 사명대사한테 인사를 시키고 가르침을 받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포로 1,500 여명을 송환시켜 주었다. 그래서 사명대사와 도쿠가와의 관계 속에서 나중에 도쿠가와 막부가 생기면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날 때까지 약 260년간 일본과 조선은 전쟁이 없었다. 도쿠가와 막부가 유훈으로 남길 정도로 사명의 역할이 전쟁 후에도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중국의 이여송 장군도 사명대사의 평양성 전투에 대해서 "사명의 승군 군대가 없었으면 이길 수 없었다"고 하였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임나일본부설과 광개토태왕비문의 조작 등을 통한 정한론이 나오고 군국주의가 되어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어 조선민족 말살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의 항일투쟁과 반일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해방 후 일본에서 군국주의자 전범들이 정치를 하면서 심화되었다.

그러나 도쿠가와 막부 시절은 조선과 우호적인 교류를 하였고 지금의 보통 일본인들은 전범의 후예 정치인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친일과 반일을 넘어서 극일을 하는데 사명대사의 삶은 귀감이 된다. 사명대사의 삶을 내년에 드라마로 볼수 있다고 한다. <칼을 품고 슬퍼하다>는 극일과 사명대사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봐야 할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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