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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통수권⑤ 남의 화살로 싸워라
특허통수권⑤ 남의 화살로 싸워라
  • 경남매일
  • 승인 2024.03.1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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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변리사
허성원 변리사

삼국지에는 제갈량의 멋진 지략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초선차전(草船借箭)' 이야기가 단연 으뜸이다. 풀단을 실은 배로 적군의 화살 10만개를 하루아침에 간단히 빌려온 그 기발한 계략 말이다. 적벽대전이 임박하였을 때 오(吳)의 도독 주유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제갈량의 재능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 마 먹고는, 그를 불러 화살 10만개를 열흘 안에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제갈량은 그 터무니없는 요구를 선뜻 받아들인다. 거기다 열흘까지 갈 것도 없이 사흘 내에 해결하겠다고 호기롭게 말하고는 군령장까지 써서 약속한다.

그러고서 배 20척을 빌려 준비하고 각 배의 양측에다 1천개씩의 풀단을 묶는다. 안개가 자욱한 사흘째 새벽이 되어서야 배들을 길게 한 줄로 이어 조조의 수군 영채에 다가가서 북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댄다. 조조군은 안개 속이 두려워 감히 나오지는 못하고 그저 적선들을 향해 화살만 비 오듯 쏘아 보냈다. 한참 화살을 맞은 후 배를 정렬 방향을 바꾸어 양측 풀단에 고루 화살이 맞도록 한 다음 배를 물렸다. 돌아와 풀단에 꽂힌 화살을 세어보니 화살은 약속한 10만 대가 훌쩍 넘었다.

어릴 적 삼국지를 읽을 때 이 대목에서 제갈량의 그 기막힌 꾀에 무릎을 쳤었다. 적의 화살을 그토록 손쉽게 뺏어온 것도 무척이나 신나는 일이지만, 그 화살로 도리어 적을 공격한다니 얼마나 통쾌한가. 자기들의 화살에 당하여야 하는 적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좌절감을 주었을 테니, 그 전술적 효과는 몇 배 더 컸을 것이다.

'적의 화살을 빌려 쓰는 전략'은 이 시대의 비즈니스 전쟁에서도 충분히 유효하다. 비즈니스에서 '적의 화살'이라면, 시장에서 싸워야 하는 경쟁사의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 등과 같은 상대의 핵심역량에 대응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지혜로운 자는 적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경쟁사의 핵심역량을 입수하고 파악하여 그것을 배워 나의 것으로 만들고, 그것으로 그들과 경쟁하며 경쟁력과 시장지배력을 키워간다면, 그게 바로 제갈공명의 지혜를 오로지 활용하는 것이다.

남의 화살을 빌리려면 그것이 가장 풍부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은 바로 특허다. 전 세계에서 매년 수백만 건의 특허가 출원되고 있고, 특허 출원된 발명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거의 예외 없이 모두 공개된다. 특허 발명은 모두 적잖은 인적 혹은 물적 자원이 투여된 연구개발의 성과이다. 이런 귀한 발명 즉 '남의 화살'은 일단 공개가 되고나면 누구든지 마음대로 열람하여 적어도 학습용으로는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소멸 특허, 다른 기술 분야 혹은 발명의 일부 등은 실제로 아무런 부담 없이 가져다 써도 문제가 되지 않는 공짜기술이다. 남의 화살은 좋은 학습, 모방 거리이다.

특허라는 것은 출원 시점에 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롭고도 진보적인 발명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발명 중 상당 부분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앞선 기술일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가 탁월한 예지력으로 시장의 미래와 소비자의 니즈를 통찰하고, 보통 사람은 그 필요조차도 알지 못한 새로운 기술의 경지를 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속한 산업이 필연적으로 나아가게 될 방향을 제시한다.

그런 발명은 선도자인 퍼스터 무버가 뒤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가는 깃발과 같다. 과거 PC, 인터넷, 스마트폰이 그러했고, 지금은 인공지능과 로봇 등이 그렇다.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이 옳은 길이라고 판단되면 후발주자는 지체 없이 그 길을 쫒아야 한다. 자칫 머뭇거리다가는 소리 없이 도태되고 만다. 파리가 천리를 가는 방법은 천리마의 꼬리에 붙으면 된다. 남의 특허는 후발주자가 붙어가야 할 천리마의 꼬리이다.

이처럼 남의 특허는 나의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나 등대가 된다. 망망대해를 노 저으며 나아가야 하는 기업들에겐 생명줄과도 같은 귀중한 가이드인 동시에,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지도 상의 랜드마크와 같다. 자신의 기술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엔지니어나 기업인이 많지만, 그들과 가만히 대화를 해보면 남의 기술 수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저 근거 없이 자신의 기술이 최고라고만 주장하는 모습을 자주 접한다. 그건 그냥 자기만족적인 자존심에 불과하다. 옳은 자부심은 항상 상대적인 비교 우위에 근거하여야 한다. 그래서 남의 특허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알려주는 거울이 된다.

그리고 특허는 무엇보다 공격 무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제 어디에서 나를 공격하여 내 비즈니스를 압박하고 방해할지 모른다. 그러니 잠재적인 적들이 어떤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지 항상 잘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손자병법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고, 맥아더 장군도 "전쟁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니 남의 특허는 항상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특급 경계 대상이다. 남의 특허를 잘 파악해두지 않는다면, 경영자로서 중대한 직무를 유기한 것이며, 기업을 위태롭게 한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적의 화살 즉 남의 특허를 잘 파악했다면 특허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다. 특허 침해의 가능성이 보이면 신속히 그것을 회피할 수 있도록 설계 변경을 하면 된다. 회피하지 못하더라도 상대의 공격이 있을 때를 대비하여 방어 논리를 잘 구축해둘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문제 특허의 약점을 찾아 사전에 제거하는 노력도 가능하다. 적절한 회피나 방어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부득이 그 특허를 빌리거나 사들여야 한다. 특허도 부동산이나 자금과 같이 산업 활동에 필요한 자원이기에 그 레버리지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기업인의 적극적인 태도이다.

그러니 기업의 특허통수권자라면 반드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남의 화살 즉 남의 특허는 학습 및 모방 거리이고, 천리마의 꼬리, 나침반, 등대 혹은 거울이며, 적의 공격 무기로서 경계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산업 자원으로서의 레버리지라는 점을. 승리는 남의 화살로 싸울 수 있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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