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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청정한 도(道)
의학은 청정한 도(道)
  • 경남매일
  • 승인 2024.03.18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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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기원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이 세상에 도(道)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다. 동서남북 전체가 청정한 도의 근본이고 의학도 분명히 의도다. 도는 뿌리가 청정한 것에 큰 의미가 깊다. 사람의 이익 증대가 삶을 만들고 올바른 생활 터전에 도가 따른다. 사람의 생계가 아닌 공중에 국토를 만들 수 없고 의도(醫道)를 장식할 수 없을 만큼 무한대일 뿐이다.

의학 근원은 히포크라테스 선사가 자연만큼 청정하다. 신농(神農)은 하루 100여 가지 식물을 맛보다 해독식물인 차나무을 발견하여 사람이 먹는 식품이 독이 될 때찻잎으로 구원했다. 과학적 신약이 나오기 전 차나무 새잎을 따서 만든 약 및 치료가 신비가 있고 미묘한 효능을 간직하여 병(病)에서 모자람 없이 스스로 도를 만들어 혁명한 의도(醫道)라 칭하여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래서 신농의 찻잎 공정 과정을 돌이켜 보면 모두 꿈같은 허망한 내용을 칭찬하면서 인류의 삶에 청정한 혁명의 의도로 가꾸어 왔다.

그래서 세상 삶에 가장 청정을 유지함이 평화 행복 질서 풍속 의학 등은 순간에 이룩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여러 차례 질병에서 구원되고 의도 혁명의 결과로 오늘의 민주주의 속에 한국의 의도를 얻기까지 어느 누구도 의의가 없고 청정의 요구에 시시비비를 수기하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과정은 인간적인 삶과 인간의 가치관이 고귀하고 평등한 인연일 뿐, 의도의 역할을 청정한 혁명이라 믿었다. '본래 청정한 의도는 사람의 세계. 산과 물, 모양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에 의도가 평등하여 국민 차등에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것이 본래 근원이 의도의 청정한 향기를 항상 두루 밝힌다.

이번에 의학계 사람들은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재화만 보고 부귀만 듣고 이기주의만 느끼는 과용에 마음을 주체로 삼고 세계 의학사가 밝힌 본체도 보지 못하고 외형만 보고 거리로 솟아지고 떼거리 행세는 의도인이 할 모습이 아니다.

의도인 여러분. 무심하게 커피 한 잔을 넉넉히 마시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사 자의 본 마음자리를 밝히어야 한다. 밝은 햇살이 공중에 떠오르듯 온 세상을 두루 비추어 장애가 없게 함이 히포크리테스 선사의 본문이 아닌가. 청정한 의도의 신비함을 알게 될 때 잘못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어떤 도이던 청정해야 한다. 의도를 배우는 사람이 청정해야 의술의 현묘하게 느끼고 일거일동이 청정한 마음이라야 의도를 정확히 배우게 될 것이다. 세상의 눈빛을 잘못 느끼어 의도에 먹칠할 경우가 가장 슬프다.

히포크라테스 선사를 다시 보고 느끼고 생각의 잘못을 자숙하고 자체가 텅 비워진 마음 깊이를 어느 곳에 들어갈 틈이 없어서 아니라 본래 의도의 인격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본래 청정한 의도의 본성을 느끼고 아는 데에 속하지 앓으며 도(道)의 세계가 그대로 존재하여 오인 없이 원상 복구가 가능하다. 그런 과정을 알 때 견해를 일으키거나 생각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그렇다고 마음 장애물을 찾아서 빨리 버리고 외도를 취해서도 안 된다. 지난 잘못 생각에 머물지도 집착하지도 않으며, 어느 쪽보다 의도의 혁명을 하면 의도가 아니라 외도가 되어 명예 회복이 불가하다. 스스로 자평하여 어느 곳이든지 오점이 이어짐이 없어야 청정한 의도의 길을 얻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의견차이의 말을 듣고 마음 밖에서 따로 깨달음을 취할 만한 도가 있다고 여긴다. 히포크라테스 선사 마음을 가지고 도를 찾아라 마음이 곧 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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