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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대기 떡이라 불리는 감제떡(甘藷餠)
빼대기 떡이라 불리는 감제떡(甘藷餠)
  • 경남매일
  • 승인 2024.03.1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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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감제떡(甘藷餠)은 고구마를 썰어 말린 것을 가루로 낸 전분으로 송편처럼 빚어 찌는 떡으로 빼대기떡이라고도 불리는 경상남도의 향토 음식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일본(日本) 육오(陸奧 무쓰)의 소전군(오다고오리)에서 맛본 고구마를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65권 청령국지 2 물산(物産) 농산(農産)편에서 "고구마[甘藷]는 덩굴과 잎이 마와 같은데, 그 덩굴은 땅에 묻으면 곧 곳곳에서 뿌리가 나고, 그 뿌리는 길이가 네대 치이고 둘레가 두세 치이다. 양끝은 좁고 껍질은 붉은 자색이며, 살은 새하얀데, 날로 먹으면 삼삼하게 달고, 푹 익혀 먹으면 매우 달고 호박 같은 맛이 나며, 거위 알처럼 둥근 것이 제일 좋다."라고 표현하였다.

고구마는 1763년(영조 39)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되었던 조엄(1719~1777)이 1738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얻어와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 일대에서 재배를 시작하였다.

1765년에는 동래부사 강필리(姜必履 1713~1767)가 전라도와 제주에 고구마를 보급하면서 경상도와 전라도를 비롯한 남해안 일대와 제주의 주요 작물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비옥하지 않은 거친 땅에서도 생육이 잘 되는 고구마는 북부지방의 감자와 더불어 조선 후기 남부지방의 구황식품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감제떡의 이름은 고구마의 한자명인 감저(甘藷)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구마는 본래 감저, 남감저(南甘藷) 혹은 조엄이 들여온 작물이라 하여 조저(趙藷) 등의 명칭이 있었지만 일반에서는 고구마로 불리게 되었다.

고구마를 감저라 하지 않고 고구마로 부르게 된 연유는 조엄이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오면서 기록한 『해사일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해사일기』의 1764년(영조 40) 6월 18일 기사에 조엄이 대마도에 갔을 때 그곳에서는 고구마를 '코코이모(孝行芋)'라고도 하였는데, 그 일본 발음이 고귀위마(古貴爲麻)였던 것에서 고구마란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다.

그런데 경상도와 제주지역에는 감저 또는 감제라는 고구마의 명칭이 남아있다.

지금과 같은 냉장보관시설이 없었던 옛날에는 당분과 수분의 함량이 높은 고구마를 상온에서 장기간 보관하기는 곤란하였다.

그러다 보니 부패하기 쉬운 고구마를 오래도록 보관하는 방편으로 건조하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고구마를 통째로 깨끗하게 씻은 다음 둥글고 얇게 썰어서 햇볕에 바싹 말린 후 보관하였다가 필요한 만큼 꺼내어 쓰는 방법이다.

이렇게 썰어서 말린 고구마를 '빼대기'라 부른다. 빼대기는 경상남도 지역 외에 전라도와 제주도에서도 만들어졌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빼대기 외에 빼떼기, 뺏대기 등으로 불리며 제주에서는 '뺏떼기', 전라도에서 '빼깽이' 등으로 불렸다.

또한, 빼대기는 '절간 고구마'라고도 불리는데, '절간'은 자른다는 뜻을 지닌 한자 '切干'의 한글 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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