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20:47 (토)
그들의 행동 편향과 그 피해자
그들의 행동 편향과 그 피해자
  • 경남매일
  • 승인 2024.03.1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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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변리사
허성원 변리사

"경기 나오기 전에 와이프가 오른쪽으로 뛰라고 했습니다." 지난 연초에 있었던 아시안컵 사우디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를 두 차례나 절묘하게 막아낸 골키퍼 조현우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 덕분에 우리 팀은 8강에 진출했었다. 그녀의 조언은 용한 예지력이라기보다, 패널티킥 상황에서 골키퍼로서 감내해야 할 남편의 무거운 심적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아내의 지혜인 듯하다.

여하튼 그 조언은 골키퍼가 좌우측 어디로든 반드시 몸을 날릴 것임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 패널티킥 상황에서 골키퍼가 가운데 서있는 모습을 거의 보기 어렵다. 그래서 공을 차야 하는 키커의 입장이라면 골키퍼가 몸을 던지는 좌우측이 아닌 가운데를 노리는 것이 가장 성공률이 높다. 이는 실제로 통계나 연구결과에서도 확인되었다.

그 사실을 골키퍼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몸을 날린다. 그건 골키퍼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수긍이 간다. 가운데에 가만히 서있다가 좌우측으로 공이 들어가는 것을 볼 때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틀린 쪽이라 하더라도 어느 쪽으로든 다부지게 몸을 날리는 편이 낫다. 그래야만 관중들에게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애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도 편하다.

이처럼 우리는 별 소용이 없거나 기대가 없음에도 불구하도 굳이 뭔가 행동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만히 있다가 당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무슨 행위를 하는 것이 적어도 심리적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행동 편향'이라 부른다.

이러한 '행동 편향'은 다양한 곳에서, 특히 조직 등에서 권한을 가진 지위에 있을 때 더 강하게 나타난다. 개인의 주식 투자, 기업 경영 혹은 국가 정부나 지자체의 행정 운영에 이르기까지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하여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현상이 많다. 사실 성공한 이들은 대체로 행동 편향 성향이 강하다. 그들은 실행력이 곧 성공의 열쇠임을 평생 온몸으로 체득하였기에, 틈만 나면 뭔가를 저지를 궁리를 한다. 하지만 대체로 행동 편향은 무의미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니 행동 욕구가 느껴지면 혹 행동 편향의 장난은 아닌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의사 파업과 관련하여 흥미 있는 연구가 있다. 의사가 파업하면 환자의 사망률은 늘어날까? 당연히 적절한 처치를 놓친 안타까운 죽음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 반대였다. 놀랍게도 환자 사망이 오히려 줄어든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을 것이다. 그런 말이 얼마 전 한 칼럼(제주매일, 김재호)에 언급된 것을 보고는, 설마 그럴까 싶어서 찾아보니 실제로 그런 연구 결과가 있었다.

미국의 에모리 대학 등의 연구진이 지난 약 30년 간 있었던 의사 파업과 환자 사망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였다. 그에 따르면 파업 기간 중에 사망률이 대체로 감소하였고 증가한 사례는 없었으며, 의사들이 복귀하고 나니 사망자 수는 다시 탄력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의사들이 파업하여야만 환자의 사망을 줄일 수 있다니 기가 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연구진은 그 주된 원인을 파업 중에 선택적 비응급 수술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수술이 사망 환자를 늘렸다는 말이다. 그럼 의사들은 왜 그런 불요불급한 수술로 사망률을 높일까? 돈을 벌 목적으로 그러는 의사도 있을 수야 있겠지만, 그 근원적인 원인은 전문직으로서의 '행동 편향'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망치를 든 자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전문직들은 모두 자기 분야의 전문지식이라는 '망치'를 든 자들이다.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찾아왔을 때 정상적인 의사하면 응당 자신의 역량에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 그의 통증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다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변호사, 변리사 등 전문직들도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의뢰인을 위해 자신의 망치를 쓰고 싶은 욕구가 혹은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부에서 분출하게 된다. 그런 욕구나 의무감이 있기에 전문직이라 자처하며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직들은 사실상 '행동편향주의자'에 가깝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작위(作爲)'를 통해 의뢰인을 돕도록 훈련받았다. 자신이 가진 온갖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여 의뢰인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지는 행동을 하여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존재이다. '작위(作爲)'가 곧 자신의 존재이유이니, 부작위(不作爲)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짓이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를 만나면 어떡해서든 나름의 행동을 취하려 든다.

그러다 '행동' 즉 작위(作爲)보다 더 귀중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슴깊이 느끼는 날이 온다. 그것은 자신의 진정한 존재이유가 자신이 행하는 행동이 아니라, 수혜자의 이익 즉 환자의 건강, 의뢰인의 승리, 기업의 성공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면 부작위도 작위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좀 더 지켜봅시다', '소송이 능사는 아닙니다' 등과 같은 부작위의 언어가 많아질수록 그는 자신의 행동 편향을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비로소 진정한 존재 의미를 각성한 실질적인 고수 전문가가 된다.

지금의 의사 파업 사태는 정부와 의사집단이 각자의 망치를 마주 들고 휘두르는 활극 상황이다. 정부는 공권력이라는 망치로 과격히 의사 수급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뜬금없이 서두르고,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대신에 역대 정권에서 여러 번 재미를 봤던 파업이라는 망치를 들고 조건반사처럼 병실을 떠났다. 눈앞의 못만 보고 망치질을 하느라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유능한 인재의 육성과 배분에 대해 아무런 고심도 없는 정부의 밀어붙이기나, 할 말이야 많겠지만 지켜보는 이들에겐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이기적 행동에 불과한 의사의 파업도, 모두 행동 편향 증상에 기인한다. 그러니 그들은 고수가 아닌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편향에 휘둘린 강력한 두 권력집단이 서로 균형을 잃고서 무모하게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기가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그 피해도 결국은 애꿎은 국민들의 몫이 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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