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9 04:54 (금)
김해오광대 원형 보전하되 시대 목소리 담아야
김해오광대 원형 보전하되 시대 목소리 담아야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3.11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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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 허모영 김해오광대 사무국장

문화는 도시 미래·자산 역할
문화예술 예산 줄 때 안타까워
청년이 문화로 먹고살 수 있게
허모영 김해오광대 사무국장은 "김해문화가 꽃피기 위해서는 예술인 시민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허모영 김해오광대 사무국장은 "김해문화가 꽃피기 위해서는 예술인 시민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화라는 단어가 만능으로 쓰인다. 각종 단어에 문화를 붙이면 곧 새로운 이름이 된다. 그럼 문화는 무엇일까? 유네스코는 문화는 '한 사회 또는 사회적 집단에서 나타나는 예술, 문학, 생활양식, 더부살이, 가치관, 전통, 신념 등의 독특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특징'이라고 정의했다. 즉 문화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습득된다는 것이다.

문화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고 익히고 함께 나누는 것이다. 좋은 문화도 같이 하는 이가 없으면 곧 사라진다. 예술문화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가치관이나 전통 역시도 그러하다. 만들어진 문화도 참여하고 나누고 시대의 목소리를 담고 변화를 받아들여야 오랫동안 이어져 가는 것이 아닐까? 지역문화를 함께 향유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김해는 역사, 문화, 인적 자원이 고루 갖춰진 지역으로 문화 콘텐츠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한때 문화예술 예산은 경전철 적자보전을 해야 한다며 줄였고 그때 문화예술인들은 적자가 끝나는 날을 기다려왔다. 지금은 전국체전 개최로 문화예술의 예산이 줄어들어 문화예술인은 또 기다려야 한다. 전국체전이 끝나면 또 어떤 이유로 문화예술의 예산을 줄일 것인지 아니면 확대할 것인지. 문화는 도시의 미래다. 금방 그 결과가 드러나지 않지만 도시의 힘이고 자산이다. 더 많은 사람이, 청년이 김해에서 문화로 먹고살 수 있는 김해문화의 바탕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하는 허모영 문화기획자(김해오광대 사무국장)를 지난 6일 오후에 김해오광대 사무실에서 만나 문화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부터 문화에 관심을 가졌나?

문화는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1986년 가을,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친구로부터 전화가 와서 문화원이란 곳을 소개했다. 당시 미문화원밖에 몰랐는데 동상동 연화사 옆에 김해문화원이 있었고 문화원이라는 이름이 좋아 선뜻 발을 들였다. 지난 1986년부터 2012년까지 26년이란 시간을 김해문화원에서 문화라는 배를 타고 김해 문화역사의 한줄기를 건너온 것 같다.

문화예술(기획)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문화원 직원이었지만 소극적이었다. 직접 사업을 기획하기 시작한 시간은 지난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다. 당시 사무국장이 문화원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 그분을 도와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교육과정을 찾아다니며 익힌 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한국문화원연합회 등의 외부공모사업을 많이 추진했다.

가락오광대가 김해오광대로 명칭 바뀌게 된 사연은?

김해오광대는 19세기 중엽에 전국적인 탈춤의 확산과 함께 연희되기 시작했다. 처음 김해군 가락면 죽림리 나루터에서 시작했다. 당시 탈춤을 조사한 민속학자 송석하 선생은 가락오광대라고 했고, 최상수 선생은 김해오광대라고 했다. 오광대연희는 일제강점기 1930년대 말경에 중단됐는데 1984년 김해문화원에서 가락 현지에 가서 당시 연희에 가담했던 생존자들에게 전수받아 가락오광대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가락면이 부산시로 편입돼 부산시 강서구 가락동이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무형문화재 신청을 하니 가락은 행정구역이 부산이라고 반려가 됐다. 이때부터 김해오광대라고 최상수 선생의 기록을 따라 명칭을 바꾸었고, 다시 김해가락오광대라고 부르다가 지난 2014년 경남무형문화재 신청 당시 역사학자의 고증을 받아 가락은 김해의 통칭이므로 김해오광대로 통일했다. 2015년 3월 5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37호 김해오광대로 지정받았다.

김해오광대의 의의는?

오광대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살아있는 문화재이다. 19세기 중엽 억눌렸던 민중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사회의 부조리를 탈을 쓰고 저항하며 민중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탈춤이라고 생각한다. 김해오광대는 6과장으로 이뤄져 있다. 중과장, 노름꾼과장, 양반과장, 영노과장, 할미영감과장, 사자무과장. 모두 당시 서민들의 시선에 변화가 요구되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탈을 쓰고 그러한 탈을 없애보려는 의지를 담은 것이 오광대이다. 따라서 무형문화재 김해오광대는 원형을 보전하되 이 시대의 목소리도 함께 담아가야 한다.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낼 때 진정한 탈춤, 살아있는 김해오광대가 될 것이다.

본받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부족한 사람인데 참 좋은 분들이 주변에서 나를 지지하고 이끌어주셨다. 모두가 스승이지만 그중 동아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신 이훈상 선생님이시다. 학문으로나 인품으로나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참스승이시다. 학문은 공유돼야 한다는 철학으로 갖고 계신 자료나 아이디어, 지식을 늘 나누어주시며, 누군가의 논문이나 저서에 대한 비평을 할 때도 먼저 장점을 보고 단점을 보라고 일러주셨다. 김해오광대가 무형문화재가 될 때도 이훈상 선생님의 고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했지만 언제나 그 그늘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김해 문화가 꽃피기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팔꿈치 법칙이라고 한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 문화예술인들도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우후죽순 단체가 생기고 곳곳에서 행사를 개최하지만 정작 서로 유사한 내용과 사람, 행사를 위한 행사를 한다면 시민의 문화 수준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김해문화가 꽃피기 위해서는 예술인, 시민,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 전통과 창의성이 공존하며 각각 단체의 정체성에 맞는 문화예술활동, 특정한 기관과 지역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만들고 누릴 수 있는 문화의 길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본인의 수필집 안에서 소개하고 싶은 글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무리 무한을 추구해도 인간의 삶은 유한한 것, 한정된 삶을 살아간다고 여기면 원망하고 시기하고 미워할 겨를이 없다. 그러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가시로 방어하고 굴레 속에 숨어버리기보다 그대로를 드러내고 천천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민달팽이처럼 살가울 일이다.

-수필집 '달팽이 속살처럼' 중에서

늘 부족한 사람이라 국궁하는 자세로 살고자 하는데 마음뿐인 듯해 나로 인해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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