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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뼈 환상 에스겔, 여호와 삼마 리더십
마른 뼈 환상 에스겔, 여호와 삼마 리더십
  • 경남매일
  • 승인 2024.03.0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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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하 인제대 경영학과 교수·시인
원종하 인제대 경영학과 교수·시인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는 사독계열의 제사장 자손으로 추정되며 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새 성전의 환상을 보여주시고 난 후 최후로 번제단을 만드는 날에 번제를 드리라 하시고 사독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예배를 집례하도록 하였다.(에스겔 43:19)

기원전 597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다의 여호와긴 왕을 포로로 잡아갈 때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여호와긴 왕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2차 침공 때 재위 3개월 만에 포로로 잡혀간다. 그때 1만 명이 포로로 잡혀갔으며 특히 왕족이나 귀족이 2천 명, 기술자 1천 명, 훈련된 군사 7천 명 등이 끌려간 참상을 당하게 된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자기 손으로 세운 왕이 아닌 까닭에 여호와 긴을 폐위시키고 작은 아버지 시드기야를 남 유다 마지막 왕으로 세운다.

"서른 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에스겔 1:1). 이러한 정세 속에서 포로 생활 5년 후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을 예루살렘으로 이동하게 하여 환상을 보여주며 제사장에서 비로소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 22년간 중점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소명을 주기 위해 보좌의 형상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의 환상을 보여 주신다. 뿐만 아니라 네 생물의 환상을 보여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엄을 보여준다. 특히 에스겔은 하나님의 성전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임재와 용서를 체험하는 성전 사역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성전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강하게 역설한다.

하나님은 에스겔의 온 삶을 통하여 상징적 행동을 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낸다. 유다가 완전히 망하기 전인 6년 동안의 시기에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파멸당한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유다가 우상을 섬기고 범죄하며,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러한 결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으며 그들이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하나님의 거룩하고 새로운 성전이 세워져 돌아오게 하겠다는 내용을 알려준다.

에스겔은 포로로 끌려와 아무런 소망과 희망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말해야 했다. 그곳에서 많은 환상과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활의 신앙을 끊임없이 전해야 했다. 특히 에스겔은 직접적인 언어보다는 환상을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은 여러 가지 환상과 비유와 상징을 통해 예언을 하게 된다.

예언자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한발 앞서서 미리 깨닫고 전하는 자이다. 헛된 구원을 기대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절망 속에서 자포자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선포한다. 미래를 앞당겨 현재에 그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곧 시대정신을 뛰어넘는 것이다.

특히 그가 본 이상은 하나님의 영광, 가증한 것들, 우상 숭배자에 대한 살육,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 측량하는 장대를 가진 자, 메시야 시대, 생명의 강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에스겔이 취한 상징적인 행동으로는 말 못하는 사람인 척 한 일, 토판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예루살렘의 포위를 상징하는 것, 430일 동안 모로 누워 쇠똥으로 구운 떡을 먹은 것, 머리털과 수염을 깎은 일, 쇠사슬을 만든 일,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성벽을 뚫은 일, 떨면서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물을 마신 일, 예루살렘 성의 함락을 한탄한 일, 슬피 울면서 넓적다리를 친 일, 손 벽을 치면서 칼로 두세 번 씌운 일, 가마 속에 고기와 뼈를 넣고 끓인 일, 자기 아내가 죽었을 때 관습적인 조의를 표하지 않은 일, 두 개의 막대기를 사용한 일 등 환상과 비유 상징의 예언자가 에스겔이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에스겔 2: 3-4).

예언자는 청중의 반응에 맞추어 메시지를 전하는 자가 아니라 반응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올바른 메시지를 전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문제는 메신저의 책임이 아니라 청중의 몫이요 듣는 사람의 책임이다. 진리는 청중의 동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영적파수꾼, 신앙의 파수꾼 사명을 감당하는 여호와 삼마의 삶을 살아가자. "그러면 그들이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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