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21:35 (토)
당신 곁에 있어도 외로워요 "카톡"
당신 곁에 있어도 외로워요 "카톡"
  • 하영란
  • 승인 2024.03.06 2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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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⑩
김기택 시인 '카톡!'

말은 오래전에 손으로 넘어가고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제쳐두고
보이지 않는 얼굴·귀와 대화 열중
김기택 시인
김기택 시인

우리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가? 집에서는 방문을 닫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서 스마트폰과 놀고,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도, 사람을 만나고서도,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영혼의 파트너인 스마트폰과 떨어지지 못하고 한 몸으로 움직이며 살고 있다.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다. 서로를 배려하고 관계가 익을 시간이 없다.

가끔 심심하고 외로울 때 스마트폰이 친구가 돼 주는 것도 사실이다. 지식 검색은 물론이고 동영상과 배움 등 순기능이 많다. 습관처럼 잡고 있다 보니, 진작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할 때조차도 그것과 떨어지기가 싫다. 떨어지려고 하면 왠지 허전하다. 허전해서 계속 들여다본다. 존재감을 확인할 카톡!의 절실한 울림이 필요하다.

귀한 시간을 내서 약속한 사람과 비싼 돈을 지불하고 차를 마시고 있다. 그런데 끝없이 울리는 카톡의 절규 때문에 '여기에 왜 나왔는지'하는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야외로 바람을 쐬러 간다. 전화가 걸려 온다. 곁에 있는 사람은 안중에 없고 통화가 길게 이어진다. 누구와 함께 있는 것일까? 이럴 때 김기택의 시 '카톡!' 이 문득 떠오른다.

이 시에서는 지하철의 진풍경을 이야기했지만 경전철이나 버스, 승용차를 같이 타고 갈 때도 이런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고개 숙이고 조용히 자신의 휴대폰에만 집중하는 것은 그나마 낫다. 무음이나 진동으로 해 놓지 않아 칭얼대는 카톡의 소음 속에서 평정심을 내려고 끝없이 수행해야 한다. 어쩌면 도를 닦기에 좋은 시대다.

우리는 어쩌면 영혼의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다. 배가 고파서 서로의 손가락으로 끝없이 찍어서 상대에게 밥을 먹여줘야 하는 시대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똑같은 조건인데 천국에는 아주 긴 숟가락으로 서로 떠먹여 주고, 지옥은 서로 자신의 긴 숟가락으로 자기가 떠먹겠다고 한단다. 멀리 떨어져 있는 허기진 영혼에게 밥을 떠먹여 주는 이곳의 풍경은 천국의 풍경인 것일까? 

카톡!

카톡!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심장에서 허파에서 진동하며 나오는 소리처럼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는 소리처럼

손가락들은 열심히 뛰고 있을 것이다
손가락에 목청과 혀가 달려 있다는 듯이
말은 오래전에 입에서 손으로 넘어갔다는 듯이

사람들은 꽉 찼는데도 지하철은 조용하다
조는 사람 하나 없지만
모두가 입과 귀를 닫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제쳐두고
보이지 않는 얼굴 들리지 않는 귀와 얘기하느라
손가락은 수다스럽고 입은 할 일이 없다

카톡! 고양이처럼 카톡! 카톡! 강아지처럼
배고픈 소리들이 울고 있다
어서 손가락으로 먹이를 찍어달라는 듯이

  -김기택의 시집 《낫이라는 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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