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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릉비. 왜구대궤의 진실
광개토태왕릉비. 왜구대궤의 진실
  • 경남매일
  • 승인 2024.03.04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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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스님
도명스님

탁본이란 석비나 기와 그리고 기물 등에 새겨진 문자나 무늬에 종이를 대고 먹이나 연필 등으로 채탁하는 기법을 말한다. 혹 비석의 글자를 알기 어려울 때도 탁본을 뜨면 그 글자가 어떤 글자인지 판별되기도 하고 또 중요한 비문은 훼손되기 전 탁본을 떠 놓으면 비문이 훼손되었을 때 이것을 근거로 복원하기도 한다. 한편 역사적 가치가 있는 탁본은 고가로 거래되기도 하는데, 지금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탁본 가운데 가장 고가를 호가하는 탁본이 바로 광개토태왕릉비다.

광개토태왕릉비 탁본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가장 가치있는 탁본은 비문이 석회로 훼손되기 전의 원석탁본이다. 그러나 필자가 예전에 언급했듯 세상에 공개된 탁본 중에 순수한 원석탁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1889년 일제가 능비의 해석문을 세상에 공개하기 전, 미리 글자를 삭제하거나 가획하였고 일부 글자들에는 석회를 칠해 변조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만 변조 전에 그들이 채탁한 탁본이 있다면 어딘가에 철저히 감추고 있을 것이다.

이전에 밝혔듯 일제가 석회를 칠한 글자는 <병신년조>의 ‘討倭殘國’으로 ‘倭’자 위에 석회를 칠해 ‘利’자로 변조했다. 그리고 그들이 같은 방식으로 변조한 또 다른 글자는 2면 9행 36열에 보이는 <경자년조>의 ‘倭寇□潰’(왜구□궤)이다. 그런데 최초의 탁본이라는 사카와의 쌍구가묵본이나 청명본, 혜정본의 원석탁본에는 모두 ‘倭滿倭潰’(왜만왜궤)로 나온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 글자는 원래 ‘寇□’였다. 하지만 일제의 변조 후 ‘滿倭’로 탁본되는데 그 이유는 ‘寇□’ 부분에 석회를 살짝 덮어 ‘滿倭’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능비에 발랐던 석회가 떨어져 나가면서 원래의 ‘寇□’ 부분이 나타났다. 그래서 중국 정부에서 주도한 1981년의 주운태 탁본에서는 ‘倭寇□潰’로 찍혀 나온 것이다.

그런데 능비의 중국 최고 권위자 왕건군은 이 부분을 ‘倭寇大潰’로 석문(釋文)한다. 대부분의 연구자들도 주운태 탁본 이후에는 두 번째와 세 번째 글자를 대개 ‘滿倭’로 보지 않고 ‘寇大’로 석문한다. 그러나 탁본을 보면 세 번째 글자는 도저히 ‘大’로 보기 어렵다. 글자가 많이 풍화 또는 훼손되어 육안으로는 아무리 보아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이 글자는 ‘완전할 完’자로 여겨진다. 왜냐면 석회가 박락된 주운태 탁본을 보면 세 번째 글자에는 ‘민갓머리 一(멱)’이 분명히 있고 중간에 길게 가로지르는 ‘一’획이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글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기 어렵기는 하나 ‘完’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 왜 일제는 이 글자를 ‘完’으로 변조했을까? 필자가 추측컨대 만약 원래의 글자가 ‘倭寇完潰’ 즉 ‘왜구가 완전히 궤멸되었다’라고 해석되면 일제의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제는 그들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왜가 고구려에 대항하는 강력한 나라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한반도 남부를 200여 년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서기 369~562)의 논리와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다. 그래서 왜가 완전히 ‘궤멸되었다’라는 능비의 기록이 그들에겐 불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完潰’라고 기록되었다 해도 ‘왜구가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왜냐면 4년 후인 갑진년에도 왜는 다시 백제와 연합해 고구려의 석성(石城)을 공격하였다고 능비에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표현될 정도로 경자년 당시 고구려군이 왜에게 크게 타격을 입혔던 것으로 보인다. 해석하기 따라선 ‘完潰’의 의미가 왜군 전체가 아닌 기해년에 신라를 침공했다가 ‘경자년 고구려군에게 일망타진 당한 왜군’만을 지칭했을 수도 있어 보인다.

어쨌든 일제는 <병신년조> ‘討倭殘國’과 <경자년조>의 ‘倭寇□潰’에 석회를 발라 변조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석회가 박락된 이후의 모든 연구자들은 ‘討利殘國’이라든지 ‘倭滿倭潰’로 잘못 석문하진 않는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면 석회를 바른 부분이 과연 <병신년조>와 <경자년조> 뿐이겠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물론 이러한 증거가 드러났는데도 부정하는 이들은 부정할 것이다. 왜냐면 이들은 진실의 추구라는 학문 본연의 목적보다는 순수하지 못한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안목이 없거나 자기 고집에 빠진 사람들은 사실을 말해주고 증거를 보여줘도 진실을 애써 외면한다. 이들은 진실보단 자기네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 발전을 위해선 틀렸을 때 빨리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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