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20:22 (토)
낙화는 아름다움 소멸이 아닌 완성
낙화는 아름다움 소멸이 아닌 완성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2.28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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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⑨
김선우 시인 '낙화, 첫사랑'
꽃이 지는 데는 연유가 있고
사랑, 마지막 순간 지켜보는 것
내 생 사랑해야 다른 생도 사랑
김선우 시인
김선우 시인

사랑의 진면목은 이별하는 태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뜨겁게 사랑하다가 이별할 때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사람이 있다. 이별은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것처럼 대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사랑이 뭔지 잘 모르면서 사랑을 한다. 상대에 대한 떨림만이 사랑이 아니다. 폭풍우 같은 감정의 휩쓸림만이 사랑이 아니다. 그 폭풍이 오는 것뿐 아니라 폭풍이 지나갈 때도 대비해야 한다. 온전히 혼자 있을 줄 아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랑을 한다. 사랑은 독립된 인격이 만나서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긴다.

데이트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다. 달콤함만을 사랑이라고 믿을 때 문제가 일어난다. 떠나겠다는 상대의 의사까지 존중해 줄 때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다. 쉽지가 않다. 타인을 내 맘대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사결정을 존중할 때 비로소 성숙한 사랑의 꽃이 피는 것이다. 말처럼 정말 쉽지 않다. 그러나 제대로 사랑한다면 떠나는 뒷모습까지 온전히 지켜보고 그 떠남을 받아들이는 것까지다.

사랑의 몫은 어디까지인가? 사랑이 시작될 때 꽃이 핀다. 꽃이 피면 반드시 진다. 이것이 인지상정이고 자연의 순리다. 꽃이 져야만 다른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내 곁에 머물던 사람이 떠나면 울거나 화를 내거나 원망하거나 애걸하거나 그 끈을 쉽게 놓기가 힘들다. 자존심 때문에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웃으면서 이별하는 사람도 있다. 김선우의 시 '낙화, 첫사랑'은 요즘처럼 2월의 날씨가 변덕을 부리고 이른 봄에 핀 꽃이 꽃잎을 떨구고 있을 때 읽기 딱 좋은 시다.

2월이 문을 닫는 지금, 벌써 이른 매화는 지고 있다. 지는 꽃 앞에서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거나, 이별을 앞둔 사람, 사랑을 새롭게 다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이 시를 권하고 싶다. 혹시 나 자신이 상대에게 대차게 차였다 할지라도 나를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를 상처 속에 내버려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에 떨어지는 그대를 받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다. 나를 먼저 사랑해야 그 기운으로 떠나는 그대를 상처 없이 보낼 수 있다. 내가 부족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연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떠나는 상대에게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아야 한다. 보내는 자는 그저 온몸으로, 떠나는 자를 끝까지 지켜보는 것만 있을 뿐이다.

꽃이 지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우리의 사랑도 피었다가 진다. 지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 해마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꽃이 져야 열매 맺는다. 당신의 사랑은 건강하신가요? 당신은 당신의 생을 사랑하고 다른 생을 사랑하고 있으신가요? 

낙화, 첫사랑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 김선우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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