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5:26 (토)
나라의 미래를 말똥 구슬로 쌓을 셈인가
나라의 미래를 말똥 구슬로 쌓을 셈인가
  • 경남매일
  • 승인 2024.02.2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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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변리사
허성원 변리사

"아들아~ 너 대학 중퇴할 생각 없냐?" 아들이 왜 그러시냐고 뚱하니 되묻는다. "얼마 전 방한했던 오픈AI의 샘 올트먼 알지? 그 친구가 온다고 하니 난데없이 '샘'자가 들어간 국내 기업들의 주가까지 오르고 난리가 났지. 근데 그도 대학 중퇴자더라고. 미국 주식시장 시총 1, 2, 3위인 MS, 애플, 구글과 6위인 페이스북의 설립자가 모두 중퇴자 아니냐. 큰일을 이루려면 대학 중퇴부터 하고 봐야 할 거 같어. 이참에 어찌 좀 독한 마음 먹어보는 게 어떠냐?"

잠시 생각을 정리한 아들이 말한다. "아빠, 저는 안 될 거 같아요. 대학을 중퇴하는 케이스는 보통 두 가지예요. 대학에서 배울 게 없는 대단한 천재이거나, 대학 졸업장이 하잖게 보일 정도로 거대한 꿈과 실행력을 가진 기업가 체질인 거죠. 그런 사람들이라면 중퇴하고 자신의 길을 가야죠. 하지만 저는 그 두 가지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아요. 제겐 아직 학교 공부가 많이 어려워요. 그리고 학교를 그만둘 만큼 거창하고 멋진 꿈을 아직 찾지 못했어요." "흠.. 그렇군. 알겠다. 아들아~ 열심히 공부해라."

역시 재능과 꿈이다. 그런 거대한 꿈을 꾸고, 어린 나이에 그에 대해 확신에 찬 결단과 행동을 실행하는 중퇴자들의 그 도전정신이 정말 놀랍다. 샘 올트먼은 중퇴 후 20세와 26세에 창업한 회사들을 성공적으로 엑시트하고 VC가 되었고, 이어 실리콘 밸리 최고의 스타트업 투자 기업인 Y콤비네이터에 들어가 30살도 되기 전에 그곳의 CEO가 되었다. 30살에 일론 머스크와 함께 창업한 오픈AI사는 챗GPT로 온 세상을 인공지능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거기다 그는 얼마 전 엄청난 계획을 발표하였다. AI 반도체 제조를 위해 7조 달러까지의 자금을 펀딩한다는 것이다. 무려 9300조원 규모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GDP의 5배, 연 예산의 15배,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2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펀딩 규모가 그 정도라면 목표 기업가치가 최소 그 10배는 되어야 할 터이니,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입을 다물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자라면 저런 엄청난 배포를 가지게 될까? 그는 아직 채 40살도 되지 않은 1985년생이니, 우리는 그로 인해 얼마나 더 놀랄 일들을 겪게 될지 알 수 없다. 2007년도의 일론 머스크 인터뷰 동영상을 다시 보았더니, 그 역시 샘 올트먼 못지않게 광오했었다. 그는 이미 우주 개척 등에 관해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을 차근차근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당시 그의 말이 실현될 것으로 믿은 사람은 몇이나 되었을까? 그는 지금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되어 있다. 그런 미친 듯 세상을 뒤집고 바꾸는 인재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환경을 갖춘 미국이 참 부럽다.

"마치 용(龍)과 같은 사람이로다(其猶龍邪)." 공자가 그들을 보았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공자가 노자를 보고 와서도 그렇게 말했었다. 하늘을 나는 새,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땅 위를 달리는 짐승은 그 움직임을 알 수 있으니 어떡해서든 잡을 수 있지만,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니 그를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샘 올트먼 등은 감히 그 뜻과 움직임을 헤아리기 어려운 용과 같은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들도 인간에게서 태어나 인간 속에서 보고 배우며 자랐다. 그런 용과 같은 인간도 그 사회 환경이 키워낸 것이다.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구슬을 아껴 여룡(驪龍)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고, 여룡도 여의주를 가졌다 하여 스스로 뽐내어 말똥 구슬을 비웃지 않는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나오는 말이다. 연암 박지원의 '낭환집서( 丸集序)'에도 같은 말이 있다. 용과 같은 인간이 창출하는 거대한 가치를 여의주에 비유한다면, 우리 같은 범인들이 매일 일상에서 겨우 만들어낸 가치는 정녕 말똥구리의 말똥 구슬 정도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용은 자신의 내재된 신령한 가치를 갈고닦아 여의주로 만들어, 그것으로 스스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며 이 세상에 없던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불러온다. 말똥구리는 말의 배설물을 귀하게 떼어내어 정성스레 말똥 구슬로 빚어 두고두고 자신의 배를 채운다. 이처럼 용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큰 가치를 창출하여 세상을 변화를 주도하지만, 말똥구리는 남이 창출한 가치에 기생하여 겨우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

용과 말똥구리가 서로의 것을 부러워하거나 비웃지는 않겠지만, 어느 쪽이 인류와 공동체에 더 큰 기여를 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기업인이 작든 크든 용에 가깝다면, 우리 같은 전문직은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기보다는 남들이 창출하거나 배설한 가치나 문제에 빌붙어 살기 때문에 말똥구리에 매우 가깝다. 그렇지 않은가? 변호사는 타인의 분쟁에, 변리사는 타인의 지적 창작에 그리고 의사는 타인의 질병에 빌붙어, 나름의 말똥 구슬을 굴리며 살아가는 말똥구리와 같다.

지금 의사들의 정원 확대를 두고 시끄럽다. 온갖 주장과 논리, 나름의 사정이야 넘치게 있겠지만 결국은 말똥구리와 말똥의 이야기이다. 정부는 말똥구리를 왕창 양성해서 말똥을 원활히 치우자고 한다. 그 과도하고 급작스런 결정의 이면에 어떤 정치적 복선이 있을 것인지 많은 이들이 미심쩍어 한다. 의사 말똥구리들의 대응 태도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그리 곱지 않다. 어느 전문 직역들보다 강한 힘을 가진 그들이 이번에 또 말똥 치우기를 거부하며 저항하는 모습은, 자신들의 말똥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직업이기주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정작 문제는, 재능 있는 최상위의 이공계 인재들이 더욱 의사 말똥구리가 되려 할 것이니, 이 나라 산업을 부흥시킬 우수한 용의 씨앗들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증원이 그렇게 왕창 늘어나면 의사가 되기 쉬워졌으니 우르르 몰려갈 것이고, 증원이 되지 않으면 풍부한 말똥이 확고히 보장되니 그 직종의 매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도대체 이 나라를 부흥시킬 여의주를 만들 용은 어찌 키워낼 것인가. 벌써 말똥 냄새가 진동하는 듯하다. 정녕 나라의 미래를 말똥 구슬로 쌓을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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