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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하면 생각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쿠바 하면 생각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 경남매일
  • 승인 2024.02.26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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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환 시민기자
정창환 시민기자

최근 한국과 쿠바가 수교를 공식화하면서 한창 이슈가 되고 있다. 쿠바 하면 20년을 그곳에서 살았던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영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문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짧게나마 그의 인생을 반추해 보자.

출생은 지금의 미국 시카고 지역인 오크 파크에서 태어났다. 헤밍웨이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았다. 어머니는 그 당시 유행이라면서 아기 헤밍웨이에게 여성용 옷을 입히기도 했는데, 그는 이런 어머니의 행위가 몹시 싫었다. 헤밍웨이는 의사이면서 사냥, 낚시 등 야외 스포츠를 즐기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그가 용감하고 남자답게 자라기를 바라면서 학교 때부터 와일드한 권투 선수로 키웠다.

열여덟 젊은 시절 제1차 세계대전에 운전병으로 입대 했으나 박격포 탄에 두 다리를 심하게 다쳐 병원에 입원 하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체험 한다. 그의 대표작도 주로 전쟁과 여자 이야기로, 자기가 직접 체험한 내용을 주제로 썼는데, 문체의 특징은 아주 간단하고 심플하다. 이중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전 세계에 커다란 선풍을 일으켰고, 이 소설로 노벨 문학상, 퓰리처상을 받고 더욱 유명 해졌다.

헤밍웨이는 여자를 좋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첫사랑은 간호사 아그네스였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다친 후 병원에 입원 하던 중, 그를 돌보던 아그네스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아그네스는 헤밍웨이보다 7살이나 많은 연상이었다. 결국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상심이 컸던 헤밍웨이는 이때의 경험이 훗날 '무기여 잘 있거라'의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된다. 아그네스에 대한 연정은 네 번의 결혼을 할 때까지 잊지 못하고 계속 해서 편지를 썼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노벨상 수상으로 전 세계를 흥분시켰던 환희의 순간은 얼마 가지 않았다. 더 이상 글을 쓸 재료도 없어 심한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 결국 1961년 7월 2일 아침 자기가 아끼던 엽총으로, 총을 입에 물고 자살한다. 자살하기 전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고, 이번에는 정말로 자살에 성공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다. 향년 61세로 세상과 이별했다. 불굴의 사나이 헤밍웨이는 평생 사고를 서른두 번 당하고, 고혈압, 피부암, 알코올 중독 등 서른여섯 번의 질병을 앓는다. 또한 가족 중 아버지를 시작으로 형, 누나, 손녀딸, 그리고 그 자신, 모두 다섯이나 자살한다. 믿기 어려운 실화다.

헤밍웨이는 명언 제조기로도 유명하다. 기자 출신인 폴리와 결혼 중에도, 헤밍웨이는 스페인 전선에서 만난 마사와 사랑을 나누면서 스릴을 즐기던 어느 날 저녁, 헤밍웨이가 집에 들어오자 마사와 연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폴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당신을 세계적인 소설가로 만들어 주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헤밍웨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싸 들고나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사랑에 큰 적(enemy)은 질투가 아니라, 바로 권태(boredom)이지요." 헤밍웨이가 말년에 가장 사랑했던 쿠바와 우리나라가 수교를 맺었다. 이제 남아메리카에 있는 카리브 해안의 최대 도시 하바나가 있는 쿠바를, 이제 우리도 여행 갈 날의 희망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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