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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살 권리와 안락하게 죽을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와 안락하게 죽을 권리
  • 경남매일
  • 승인 2024.02.25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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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얼마 전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가 자택에서 동반 안락사했다는 방송보도를 보았다. 그가 설립한 '권리포럼연구소'는 "판 아흐트 전 총리가 93세를 일기로 70년을 함께 해로하며 항상 '내 여인'이라고 불렀던 부인 외제니 여사와 함께 손을 맞잡고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두 분의 장례식은 비공개로 치렀다고 한다. 참 아름다운 죽음으로 '죽을 권리'를 용기 있게 실천한 행복한 부부였다. 네덜란드는 지난 2002년 세계 최초로 적극적인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다. 단, 환자가 자발적으로 안락사를 요청한 경우와 합리적인 다른 해결책이 없는 경우 등 6가지 조건을 충족할 때 안락사를 허용한다.

영국 가디언지의 보도에 의하면 네덜란드의 부부 동반 안락사 건수는 2020년 13쌍, 2021년 16쌍, 2022년 29쌍이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는데 우연치고는 희귀한 사례인 것 같다. 총리부인도 건강상 문제가 있었으며, 특히 아흐트 판 전 총리가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4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면서 부부가 동반 안락사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2018년 연명의료중단(존엄사)을 합법화했지만 의사조력을 포함한 안락사는 불법이다. 그러나 유럽 각국은 말기 암 환자 등을 대상으로 안락사 제한연령도 없애는 추세이다. 한국, 영국 등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국가의 난치병 환자 중 일부는 스위스 정부에서 허가한 민간단체에 의사조력사망 안락사를 의뢰한다고 한다. 지난해 10명가량의 한국인 난치병 환자가 이 단체들을 찾아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처럼 유럽 각국(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은 인간답게 살 권리와 함께 안락하게 죽을 권리를 합법화하고 있다. 일본의 40대 남성회사원이 스위스 바젤의 한 병원에서 안락사를 결심한 이유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삶의 기본인 호흡, 식사, 배변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고 싶습니다." 이 세상을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사라진 사람의 처절한 절규이기에 인생무상을 절감한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느낄 수 없는 최악의 상황(불치병)에 처했을 때, 환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 미치는 고통 또한 환자 못지않다. 오죽하면 '긴병에 효자 없다'고 했을까. 환자의 배우자, 자녀, 친인척 등 모두가 정신적 물질적 고통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한 개인의 고통을 안락사로 끝냄으로써 관계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삶이 평안해진다면 안락사의 합법화는 당연히 인정돼야 할 것이다. 물론 안락사를 허용하면 종교적, 인권적 측면에서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장애인이나 취약계층 환자들은 과도한 의료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안락사를 선택하도록 압박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주요국의 자살, 또는 안락사 현황을 보면 캐나다 1만 64명, 네덜란드 7666명, 벨기에 2699명, 미국 1300명(2021기준) 등이다. 한국의 경우 2019년 서울신문사에서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에 대한 설문조사결과 80%가 찬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의협에서 의사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8.5%가 조력안락사도입을 찬성한다고 했다. 그 이유로 자기결정권의 보장, 편안한 임종을 통한 웰 다잉(well dying), 질병고통 경감, 가족의 정신적 경제적 고통 경감, 의료비와 돌봄 등 사회적 부담의 경감 등을 꼽았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10만 명당 58.6명으로 OECD 평균 18.8명의 3배 수준이다. 이제 한국인의 기대수명도 의술의 발달로 이미 80세를 넘겼다. 그러나 기대수명만큼 건강수명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초고령사회(총인구의 20.3%가 노인)를 맞아 노인성 치매환자의 급증과 고지혈증, 암 등의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자기 몸을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삶은 죽은 목숨과 마찬가지다. 소생 가망성 없는 생명의 연장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며 배우자나 가족들에게 짐만 지우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한없는 축복이다. 그러나 질병의 고통 속에 사는 삶은 인간답게 살 권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생명의 유한성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기에 더욱 그렇다. 한평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는 것이 천지 만물의 이치요 순리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이지만 타인에게까지 고통을 주면서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건강한 삶을 오래 동안 유지한 후 아름다운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다. 한번 왔다 한번 가는 초로(草露)인생. 사람답게 살 권리 못지않게 안락하게 죽을 권리도 보장되는 웰 다잉의 시대가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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