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5:45 (토)
자발성·생생함 담은 참된 삶으로 초대
자발성·생생함 담은 참된 삶으로 초대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2.22 2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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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넘기기 ⑦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자유는 독립성·합리성 가지지만
개인을 고립·불안한 존재로 몰아
자발성이 고독의 공포 극복 방법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방종이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자유를 누리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하니 자유롭기 위해서는 개인이 자유를 감당할 힘도 있어야 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후에 자아의 각성과 함께 개성을 중시하게 되면서 근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체주의적 명령이 아니라 개인인 내가 생각해서 결정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개인주의 시대를 넘어서 초 개인주의 시대다. 누리는 자유가 예전에 비해서 엄청나게 커졌다. 개인이 누리는 자유가 큰 만큼 고립감도 크다. 대가족이 모여 살면 개인이 누리는 자유는 적다. 그러나 외로움은 덜하다. 혼자서 자유로운 만큼 그 고독을 잘 요리해야 한다. 자유를 잘 요리하지 못할 때 자유로부터 오히려 도망치고 싶어진다.

현대인들은 자유를 끝없이 원하고 있지만,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심리도 있다. 그 심리를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책이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다. 책이 쉽지는 않다. 차근차근 읽어 가다 보면 작가가 요약 정리도 해주면서 앞으로 무슨 말을 할 것이라고 친절하게 밝힌다. 작가를 믿고 호흡을 길게 가다듬으며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장 끝을 넘기게 될 것이다.

가독성을 위해 이 책(김석희 번역)에 있는 '근대인'을 '현대인'으로 바꾸어서 사용함을 밝힌다.

에리히 프롬은 이 책의 주제는 '현대인은 개인에게 안전을 보장해 주는 동시에 개인을 속박하던 전(前) 개인주의 사회의 굴레에서는 자유로워졌겠지만, 개인적 자아의 실현, 즉 개인의 지적·감정적·감각적 잠재력의 표현이라는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 자유는 현대인에게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개인을 불안하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 고립은 참기 어려운 것이다.'고 하면서 '개인이 고립을 벗어나려면, 자유라는 무거운 부담을 피해 다시 의존과 복종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독자성과 개인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인 자유를 완전히 실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초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져도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힘들다. 자유의 무게를 피해서 도피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작가가 중시한 부분 몇 꼭지를 여기에 소개한다. 프롬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자유를 외치던 인간이 왜 의존과 복종으로 돌아가는지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현대인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현대인은 자신이 좋아 보이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적인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는 익명의 권위에 순응하고, 자신의 자아가 아닌 자아를 받아들인다. 그럴수록 무력감은 더욱 심해지고, 더욱 순응할 수밖에 없다. 현대인은 겉보기에는 낙관적이고 창의적이지만, 실제로는 깊은 무력감에 압도되어 다가오는 재앙을 마비된 것처럼 멍하니 지켜볼 뿐이다. 자동인형 같은 인간의 절망은 파시즘의 정치적 목적을 키우기 좋은 비옥한 토양이다.' 사실 자유로운 개인이 있는 것 같지만 자동인형인 개인일 수도 있다. 자동인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있어야 하는가? 프롬의 대안을 따라가 보자.

프롬은 자유에는 자발성이 있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인은 고독을 참지 못하고, 고립된 존재로서의 개인은 바깥세상에 비해 철저하게 무력하고, 따라서 바깥세상을 두려워한다. 그는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의 통일성은 적어도 그에게는 깨진 상태이고, 그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기준점을 잃어버렸다.

그는 자기 자신과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에 사로잡히고, 결국은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모든 원칙을 의심하게 된다. 무력감과 회의는 둘 다 삶을 마비시키고 인간은 살기 위해 자유로-소극적인 자유-로부터 달아나려고 애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자발적인 활동이고 자발적인 활동은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고독의 공포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자신을 활동적이며 창조적인 존재로서 실감하는 동시에 삶의 참된 의미는 '자발적으로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뿐이다.

당신은 자발적으로 생생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자동인형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고 스스로 의심해 보는 것이 어쩌면 자유로 한 발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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