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9:50 (토)
허전한 사람과 따뜻한 국수 먹어요
허전한 사람과 따뜻한 국수 먹어요
  • 하영란
  • 승인 2024.02.21 2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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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⑧

이상국 시인 '국수가 먹고 싶다'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
자신 위로받고 싶을 때
허기진 영혼의 위안 되죠

영끌하는 사회다. '영끌'이란 '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줄임말이다. 이 말은 부동산·주식 시장이 과열되면서 부동산이나 주식 등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대출을 최대한 받고, 아주 작고 사소한 것까지 다 끌어모으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현재는 온갖 곳에 다 붙여서 쓰고 있다. 영끌이란 한 단어로 지금의 이 시대를 정의할 수 있다고 하면 과언일까?

영끌해서 살고 있다. 영끌해서 집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구하고 공부하고 예술가는 예술을 한다. 그러나 영끌해서 결과가 좋으면 좋다. 결과가 참담할 때가 많다. 영혼을 갈아 넣어서 글을 쓰고 발표를 해도 고작 돌아오는 것이 밥 한 끼 값도 되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영혼은 영혼을 갈아 넣은 만큼 아프다.

그렇게 아파 본 사람은 영혼이 허기진 사람을 알아본다. 마음의 모서리를 다쳐본 사람 역시도 알아본다. 그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는 걸음걸이를 읽을 줄 알기 때문이다. 영끌했지만 결과가 아픈 사람에게 국수 한 그릇 같은 이상국의 시 '국수가 먹고 싶다'를 전하고 싶다.

누군가와 어떨 때 밥을 먹고 싶은가? 관계를 더 이어 가고 싶을 때 밥을 먹자고 한다. 자발적 밥 먹기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밥을 먹고 싶다. 따뜻한 밥을 먹다 보면 없던 정도 쌓인다. 밥을 통해서 정이 생긴다. 축하하거나 한 끼 대접하고 싶을 때는 밥을 먹자고 한다. 그러나 밥이 아닌 국수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차려입지 않고 눈물 자국을 닦고 아픈 마음을 꾹 누르며 아무 말 하지 않고 따끈한 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후루룩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몸의 허기보다 마음의 허기가 져 따끈한 국물이 있는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살 것 같은 날이 있다.

영끌당하고, 봄비는 내리고 마음에도 비가 내릴 때 촉촉이 젖은 눈을 봄비 탓이라고 말하며 내려오는 눈물에 콧물까지 나올 때, 콧물을 훔치는 소리인지 국수 면발 넘어가는 소리인지 모르는 그런 날이 없었다면 당신은 그래도 살만한 것이다.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과 국수가 먹고 싶을 때 이 시가 국수 한 그릇이다. 울고 싶은 사람과 허름한 식당에서 정성스럽게 끓여주는 국수를 먹으며 자신이 위로받고 싶을 때 이 시를 권한다.

국수가 먹고 싶다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 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의 시집 '국수가 먹고 싶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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