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7:03 (일)
[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예술 노블레스 오블리주, 누림의 美 넘쳐요
[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예술 노블레스 오블리주, 누림의 美 넘쳐요
  • 한지현
  • 승인 2024.02.14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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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루마 아를 아트센터

중세시대 도시에 자리한 현대적 예술공간 자랑
문화예술로 사회에 보답하는 공익정신 빛나
한국 현대미술 작가 구정아 작품 눈길 끌어
지역의 환경·사회 공헌하는 예술 프로젝트
'아틀리에 공원' 배경으로 선 루마 아를의 탑
'아틀리에 공원' 배경으로 선 루마 아를의 탑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라는 뜻의 이 프랑스어 표현은, 주어진 이름이나 신분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18세기 프랑스 공작이었던 피에르-마크-가스통 드 레비(Pierre-Marc-Gaston de Levis)의 격언으로 전해진다. 당시 귀족 및 특권 계층의 도덕적,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고자 했던 이 숭고한 이념은 오늘날 많은 기업이 축적한 부를 공익에 기여하는 현대 기부 운동의 밑바탕이 됐다.

루마 아를의 탑 꼭대기서 바라본 '아틀 리에 공원'의 풍경
루마 아를의 탑 꼭대기서 바라본 '아틀 리에 공원'의 풍경

사회로부터 얻은 부를 다시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문화예술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21년 프랑스 아를에 문을 연 루마 아를(Luma Arles) 아트센터는 세계적인 컬렉터 마야 호프만(Maja Hoffmann)에 의해 설립됐다.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의 창립자 후손으로도 알려진 그는 2004년 이래 루마 재단(Luma Foundation)을 통해 다방면으로 현대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루마 아를은 스페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축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 디자인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역 자연물들로 만들어진 다양한 자재들을 소개하는 '아틀리에 아를'
지역 자연물들로 만들어진 다양한 자재들을 소개하는 '아틀리에 아를'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아를의 낮은 건물들 사이로 저 멀리 루마 아를의 탑이 우뚝 솟아 있다. 오래된 도시에 현대적인 면모를 더하는 이 상징적인 스테인리스 건축물은 반짝이는 그 모습이 꼭 프랑스 남부의 햇살을 닮았다. 조각난 유리로 연결된 10여 개의 층과 울퉁불퉁하면서도 균형 잡힌 외관은 웅장함을 자랑하는 중세시대 아를의 원형극장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프랑스 유일의 국립 사진 학교, 세계적인 사진 축제인 아를 국제사진전 (Rencontres d'Arles), 그리고 반 고흐 재단 (Fondation Vincent van Gogh)에 이어 새롭게 아를에 자리한 이 아트센터는 아를이 새로운 현대예술의 흐름을 이끄는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루마 아를의 건물 외벽
빛을 받아 반짝이는 루마 아를의 건물 외벽

루마 아를은 주요 전시 공간인 탑을 비롯해 그 주변으로 펼쳐진 '아틀리에 공원(Parc des ateliers)'을 아우른다. 아름다운 론 강과 카마르그 습지를 배경으로 잘 조성된 공원의 모습이 돋보인다. 버려졌던 철도공장을 개조한 6개의 예술공간에서는 전시회, 공연, 콘퍼런스,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 연중 내내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매년 7월에서 9월 사이에는 아를 국제사진전의 작품 또한 만나볼 수 있다. 공원 한편에 자리한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에서는 광물, 소금, 흙 등 지역의 자연물에서 추출한 원료들을 활용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디자인 프로젝트에는 지역의 환경 및 사회문제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재단의 목표가 드러난다.

루마 아를의 상징이 된 독일 작가 카스텐 휠러의 작품
루마 아를의 상징이 된 독일 작가 카스텐 휠러의 작품

루마 아를에서는 사진을 비롯해 설치 미술, 미디어 아트, 3D 아트 등 현대 기술과 예술을 접목한 신진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생태, 인권, 교육 및 문화를 주제로 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들을 소개한다는 점이 여타 아를의 미술관과는 차별화되는 점이다. 놀라운 점은 이 수준 높은 작품들이 모두 무료로 관객들에게 개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운영 방침에는 지역민 모두가 마음껏 문화예술을 누리는 공간을 선사하고자 하는 루마 아를의 바람이 담겨있다. 건물 외곽에는 예술 작품으로 구성된 여가 및 휴식 시설들 또한 마련돼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구정아 작가의 작품 스케이트 파크 'OooOoO' 또한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들로 가득한 전시관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들로 가득한 전시관

공원을 한 바퀴 둘러 탑 꼭대기에 오르자 루마 아를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잔디밭에 누워 황금빛으로 물든 노을을 감상하는 사람들, 산책코스를 따라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지는 오후를 누리고 있다. 이 모두에게 예술을 누릴 권리를 나눠 주는 기쁨,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루마 아를에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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