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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릉비의 '討倭殘國'이 중요한 이유 상
광개토태왕릉비의 '討倭殘國'이 중요한 이유 상
  • 경남매일
  • 승인 2024.02.1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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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세상 모든 분야에서는 이치(理致)라는 것이 존재한다. 또한 이치의 가장 큰 부분은 도의 이치인 도리(道理)일 것이다. 도리란 인간이 행해야 할 바른길이기도 하지만 존재의 근원을 밝히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모든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학문도 본연의 도리가 있는데 그것은 진실의 규명이다. 이처럼 글 속에도 바른 이치와 논리가 있어야 하며 특히 문장에서는 서론·본론·결론이 명확해야 올바른 문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서론과 본론과 결론이 연결되지 않고 따로 논다면 그것은 문자는 될 수 있어도 글의 문맥이 맞지 않는 비문(非文)이 된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애증이 뒤섞인 불가친 불가원의 묘한 사이다. 친하게 지내야겠지만, 언제 우리의 뒤통수를 칠지 모르기에 항상 예의주시해야 한다. 특히 역사 분야는 그들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좋은 건덕지로 항상 우리를 위협하는 흉기가 된다. 그들이 과거에 사용했던 전술은 고토를 회복한다느니 또는 한반도에 있지도 않았던 임나의 위치를 자기네 마음대로 한반도에 비정한다든지 하는 방법들이었다. 물론 자기네들은 생존권이 걸려있으니 그렇게라도 해야겠지만 결코 우리가 타협하거나 용인해선 안 될 문제다. 만일 우리가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고자 하면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 부분만큼은 어떠한 경우라도 확고부동한 의지로 지켜내야만 할 것이다.

한일 간 역사 해석의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에는 광개토태왕릉비 <을미년조>의 '渡海破'가 있다. 또 다음 해인 <병신년조>의 '討倭殘國'이 있는데 많은 연구자들이 해석을 달리히는 글자는 '倭' 한 글자이다. 그러나 좀 더 깊게 탐색해 보면 이 하나의 글자가 얼마만큼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연구자들은 이 글자가 '利'나 '伐' 또는 '倭'냐 하는 원래의 글자를 복원하는 데에만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문장 전체와 문맥을 보면 이 부분이 어떤 글자이냐에 따라 을미년과 경자년뿐 아니라 능비 전체에서의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왜와 신라의 입지가 크게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단적인 예로 <을미년조>의 신묘년 기사에서 '渡海破'의 주어 즉 바다를 건너간 주체가 '고구려냐' '왜냐'의 결과에 따라 당시 국제관계의 상당 부분이 달라진다. 사실 이 점을 노리고 일제가 능비를 변조하였던 것이다.

일제가 해석한 <을미년조>는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新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백잔과 신라는 옛날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잔과 신라를 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때문에 영락 6년 병신년 대왕께서 몸소 수군을 이끌어 잔국을 토벌했다'인데 확실히 변조됐다. 반면 이를 복구한 원문을 보면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 以辛卯年來渡/ 二破 百殘倭侵新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倭殘國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이었으며 전부터 조공을 왔다. 그러나 왜는 신묘년부터 물을 건너 (조공을) 왔다./ 두 파렴치 백잔과 왜가 신라를 침공해 신민으로 삼으려 했다./ 때문에 영락 6년 병신년 태왕께서 몸소 수군을 이끌고 왜와 백잔을 토벌했다'로 바뀐다.

위의 문장은 세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다. 서론은 백제·신라·왜는 고구려에 조공 오는 한 단계 아래의 나라들이다. 본론은 그런데 두 파렴치한 백제와 왜가 고구려의 허락없이 약한 신라를 침공했다. 결론은 그래서 태왕이 직접 백제와 왜를 토벌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필자가 문맥과 탁본에 근거하여 새로 복원한 문장을 보면 서론·본론·결론이 분명하고 문맥에 무리가 없다. 일제에 의해 변조되기 전의 원문은 이처럼 단순하며 복잡한 논리가 전혀 필요치 않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변조된 앞의 문장을 보면 갑자기 왜가 주어로 등장해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황당한 내용이 등장하는 것이다.

일제는 먼저 <을미년조>와 <병신년조>를 통해 왜의 존재를 크게 부각하려 했고 그리하려면 세 군데의 주요 포인트를 변조해야 했다. 첫 번째는 '渡海破' 부분이고 두 번째는 결락된 '□□' 부분이며 세 번째는 '討倭殘國' 부분이었다. 그들은 많은 고심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세 부분 가운데 한 곳이라도 어긋나 버리면 능비의 변조는 금방 탄로 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명의 뛰어난 관제 사학자를 동원했다. 그러나 전체의 흐름에 위배되지 않고 문장을 변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완벽에 가깝게 해냈다. 비문 변조에 있어선 설령 한문의 신(神)이 온다 해도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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