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3:55 (일)
광개토태왕릉비 탁본. 진정한 원석탁본은 어디에
광개토태왕릉비 탁본. 진정한 원석탁본은 어디에
  • 경남매일
  • 승인 2024.02.05 22: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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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광개토태왕릉비 탁본에서 말하는 '원석탁본'이란 비문이 변조되기 전에 채탁한 탁본을 말한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일찍부터 능비의 '討倭殘國'이 '討利殘國'으로 변조됐는데 문맥의 흐름을 끊기 위해서였고 그 방법은 '倭'자 위에 석회를 발라 '利'자로 새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카와가 쌍구가묵본을 입수할 당시의 정황을 보면 그가 직접 변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1884년 일본에 탁본을 가져갔고 관학자들은 최대한 빨리 비문을 풀이한 후 그들에게 불리한 '渡海破' 부분을 변조해야 했는데 그 시기는 1889년 이전이다. 그들은 능비의 특정 부위를 변조했고 또 그 부분의 탁본을 다시 떠서 원래의 탁본과 교체했을 것이다. 사카와본은 33장의 탁본을 이어 붙인 것이라 이것이 가능하다.

한편 능비 변조설을 부인하는 측은 "사카와의 한문 실력으로 짧은 시간에 변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사카와가 1883년 비의 존재를 알았고 1년 후인 1884년 탁본을 구해 참모본부로 바로 갔기에 변조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참모본부가 비를 변조한 시기는 '渡海破'가 나오는 광서기축본(1889) 이전이 분명하다. 당시 일제는 요코이 다다나오를 비롯한 최고의 학자들이 있었기에 비문 변조도 탁본과 석문(釋文)을 공개한 1889년까지 굳이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음흉한 그들은 재빨리 <을미년조>의 '두 二'자를 가획하여 '바다 海'로 바꾸었고 <병신년조>의 '討倭殘國'은 '倭'자 전체에 석회를 발라 '利'자로 바꾸었던 것이다.

이처럼 일제가 처음 석회를 덮어 변조한 글자는 '利'였다. 그러나 세월의 풍화 속에 '利'자 전체가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석회를 칠할 때 음각된 원래의 '倭'자 안에도 석회가 메워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倭'자에 남아 있던 석회마저 떨어져 나가면서 마치 '伐'자처럼 보인 것이다. 즉 倭 > 利 > 倭 > 伐 순으로 됐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 '伐'자에서 나머지 석회가 떨어져 나가면 원래의 '倭'자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필자도 처음엔 일제가 '倭'자를 '伐'자처럼 속이기 위해 강력한 특수 시멘트로 '倭'자의 획 일부를 메꾼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이들은 오히려 '利' 자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변조하고자 하는 글자 '倭'자 자체에 석회를 약간 두껍게 발라 원하는 글자 '利'를 써넣는 방식을 취했었다. 필자는 최근 국내의 초기 원석탁본이라는 <청명본>과 <혜정본>을 자세히 살펴보니 일제의 의도와 함께 변조의 과정까지도 보였다. 그들이 원래 변조한 글자는 '利'였지만 세월의 풍화를 거치면서 의도치 않게 '伐'자처럼 되어버렸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원석탁본은 모두 3종으로 청명본과 혜정본 그리고 서울대 규장각본이 있다. 그 가운데 상태가 좋은 선본(善本)은 故 청명 임창순 선생이 소장했던 청명본과 경희대 혜정박물관이 소장한 김희숙 선생의 혜정본으로 알려져 있다. 청명본은 중국의 탁본가 이운종이 1889년 채탁했다는 명확한 근거가 있고 혜정본은 채탁한 시기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혜정본 또한 초기의 원석탁본임은 분명하며 그 가치 또한 매우 높다.

사실 원석탁본이란 비에 석회를 칠하기 전에 채탁한 탁본을 말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원석탁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원석탁본 마저 일제가 이미 일부 글자들 위에 석회를 칠해 변조했기 때문이다. 원석탁본의 원래 가치는 석회가 칠해지기 전의 온전한 탁본이라는데 있다. 그러나 비문은 삭제와 가획 그리고 석회의 메꿈 등으로 변조되었기에 그 순수성을 잃어버렸다고 보아야 한다. 비문 원래의 상태가 훼손된 점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울 순 있으나 이제는 원석탁본의 가치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

새로운 가치란 다름이 아니라 비문을 통한 역사적 진실규명이다. 이 비는 제국주의 역사 왜곡의 살아있는 증거물이기에 거짓을 행한 국가들에게는 이 비와 탁본을 통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하는 거울이 되게 해야 한다. 또한 우리 국민들에게는 힘이 없으면 주변국에게 역사도 마음대로 유린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푯대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조상님들이 훌륭한 업적을 만든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후손인 우리들이 그것을 잘 보존하고 선양하는 일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인 것이다.

최근 故 청명 선생님의 아드님이 소장했던 청명본을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매입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보물을 개인보다 국가 차원에서 더욱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며 지금 디지털 복원본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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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2024-03-25 06:56:29
도 넘은 일본 역사 왜곡, 우리 대통령은 알고 있는가?
한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 특별법을 두고 “이런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이 한국에) 확실한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우호”라고 일본은 기술하고 있다.
일방의 역사 왜곡이 계속되는 한 한-일 관계도 미래로 나아가기 어렵다. 일본 정부의 대오각성과 시정을 요구한다. 보다 윤석열 정부 또한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을 부추기는 잘못을 반복해선 안 된다.
지금 윤석열 정권을 보면 완전히 친일 사상에 빠져 헛소리하는 친일 정치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은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