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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 병든 사람들
고독에 병든 사람들
  • 경남매일
  • 승인 2024.02.0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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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우리 시대의 영원한 스승 김형석 교수가 1960년대 초에 펴낸 에세이 <고독이라는 병>은 60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얼마 전 서점에 들렀더니 2020년에 나온 신판이 있었다. 초판 당시 중학생이었던 필자는 이 에세이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고교입시 공부에 지친 심신으로 심한 고독감에 빠져 있을 때였다. 당시 일류고교에 입학하려면 3당4락이나 4당5락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하루 잠을 3~4시간 이상 자면 낙방한다는 말이다. 지금 중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먼 별나라 얘기처럼 들릴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에세이에서 "사랑이 있는 삶은 외롭지 않다. 나 혼자의 길을 떠나야 한다. 시간은 끝나지만 영원은 있고, 힘든 여정이었으나 사랑이 있었기에 고아가 아니라는 다짐을 한다"고 했다. 이번 신판 서문에서는 "나 자신이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 한 방법이 글을 쓰는 일이었다. 어떤 것은 나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했다. 그렇게 쉽고 정감 있게 썼던 이야기들이 한 권의 수필집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내 나이 100세가 넘어 내 인생을 접어야 할 때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날 준비를 한다. 나 혼자의 길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고독이라는 병을 치유받을 수 있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며, 그 실천방법의 하나가 글쓰기임을 강조한다. 필자 역시 혼자가 된 지 어언 십 년이 넘었다. 외톨이의 삶을 살아오면서 느끼는 고독감을 떨쳐내는 방법이 김형석 교수처럼 독서와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나 자신과의 대화이자 나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내 글을 읽는 사람과의 소통이기 때문에 자신이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얼마 전 KBS 교양프로에서 1인 가구의 절반이 '고독사' 걱정.. '고립의 시대' 어떻게 넘어설까? 라는 주제의 다큐가 방송되었다.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은 2022년 기준 34.5%에 이른다. 이제 혼밥(혼자 밥 먹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은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식당이나 술집도 혼밥, 혼술이 방해받지 않게 시설해 놓았다. 독거시대의 핵 개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독거가구의 비극인 고독사가 45%대에 이르렀으니 고독이 병인 시대를 실감케 한다.

도심 뒷골목의 좁은 쪽방촌에 사는 어느 대담자의 탄식 어린 호소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한 몸을 겨우 누일 좁은 방이 전부가 된 고독한 삶. 이제는 더 내려갈 곳도 없는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것은 외로움이다. 함께 보낼 가족이 없어 혼자 보내는 설. 추석 명절, 병원에서 보호자를 찾는 순간이 제일 괴롭다."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가장 취약한 사회계층인 가난한 외톨이는 정부가 내세우는 보편적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들은 작은 지원이지만 정부의 복지 시책을 몰라서 그 혜택을 누릴 기회를 잃거나, 턱 없이 부족한 최저생계비지원으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방에 웅크리고 떨면서 영하의 맹추위와 싸운다. 자신에게 소리 없이 다가오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모진 목숨을 이어간다.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이다. 고독감은 인간이 느끼는 원초적 정서이지만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부터 깊숙이 파고든다. 외로움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느끼는 심적 소외감이다. 특히 취업난으로 꿈을 잃은 20~30세대, 실직당한 40~50돌싱세대, 정년퇴직 후 저축된 돈이 없는 독거노인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외로움을 가중시킨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은 사별이나 이혼, 비혼 상태로 외로움을 경험하더라도 해소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취미생활과 연애도 하고, 각종 문화생활을 통해 무리 집단에 소속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외로움의 해소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선택지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은 고독이라는 병에 걸리기 마련이다. 사회학자들은 외로움과 고립은 그저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압박에서 비롯된 질병이라고 말한다. 사회가 만들어낸 시대의 역병인 외로움과 고립은 1인 가구의 대폭 증가, 빈부격차의 심화, 사회계층 간의 갈등 고조, 극단적인 대결정치행태, 급속한 고령화, 경쟁적이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등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서구사회는 전체가구의 56%가 1인 가구이며 우리나라(34.5%)도 머잖아 그 뒤를 따를 것이다. 한국도 올해 초고령사회(20.3%)에 진입하여 천만 노인 시대가 열렸다. 여기에 합계출산율 세계 최하위(0.78%)는 노인 대국으로 가는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독거가구의 증가로 이어져 외로움으로 병든 고립된 삶이 될 개연성이 높다. 이제 정부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고독 해소의 근본 대책을 시급히 강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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