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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국명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고려 국명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 경남매일
  • 승인 2024.02.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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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 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 교장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려(高麗)라는 국명은 왕건이 건국한 고려시대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 장수왕 시절 건립된 중원고구려비에 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기록되어 있다. 장수왕 시대부터 고려라는 국명을 사용하였고 중국의 역사서에도 고구려 후기는 고려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가 서역에 알려진 것은 언제일까? 우리나라에서 약 5000㎞ 떨어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에 고구려(실제국명 고려)의 사신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640년에서 660년 사이 즉 고(구)려와 당나라의 대립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가 당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돌궐의 국가와 유대를 추구했던 것이다.

661년 제 2차 고당전쟁 중 돌궐의 한 부족 철륵이 고(구)려와 전쟁중인 당나라를 공격했다. 이에 당나라의 일부 군대가 돌아가고 고(구)려가 승리한다. 바로 이런 철륵의 움직임 뒤에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고(구)려 사신들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구도로 당시 정세를 판단한다. 그러나 거시적 관점으로 국력을 보면 고(구)려와 당, 돌궐 등이 중요한 주체였다. 그래서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거시적인 안목으로 돌궐에 사신을 보냈던 것이다. 필자는 몇년 전 아프라시압 궁전벽화를 비단길 탐방을 하면서 직접 보았다. 이 비단길을 통해서 유럽까지 연결 되었는데 이 때 고려(Corea)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해의 왕들도 자신들의 나라를 고려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사실은 모르고 타인의 입장에서 우리 조상들의 나라를 불러왔다.

발해는 당나라에서 부르던 나라 이름이다. 당은 고(구)려가 부활한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갈족이 다수로 이루어진 나라가 발해라고 기록하였다. 발해는 말갈족이 다수가 아닌 나라인데도 중국의 사서를 따라 배워서 역사 사실로 알고 있다.

발해는 고(구)려, 말갈, 거란 등 여러 종족들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였다. 고(구)려 유민이 당에 끌려 갔어도 인구수에 있어서는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의 다수였다. <발해 진짜 이름은 발해가 아니다!>, <발해는 말갈족 다수의 나라가 아니다>라는 역사 사실을 사료를 통해 잘 설명한 동영상을 '청화수'가 제작하였는데, YouTube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중국 발음으로 말갈과 발해의 발음이 유사하다고 한다. 그래서 말갈이 연상되는 발해라는 국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말갈은 중국인들이 만주에 살던 사람들을 통칭하여 부르던 비하의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도 한다. 신라도 고(구)려의 부활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당에서 사용하는 발해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는 중국입장에서 쓴 나라이름과 사람이름을 그대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이 해준 말을 그대로 쓰면서 자신이 한 진짜 자신의 이야기는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식민교육과 식민사관, 사대모화 사상이 청산되지 않아서 주인정신을 지니고 역사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발해인들은 자신들의 나라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였을까? 어떤 사람은 대진국(大振國)이라고 하면 자주적인 역사인식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구당서>에 발해왕을 진국왕(振國王)이라고 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중국 당나라에서 부른 호칭이다.

일본의 <속일본기> 759년조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다. "고려의 사신 양승경이 왔다." 일본에서는 발해를 고려로 기록한 것이다. 양승경이 가져간 서신에 "고려국왕 대흠무가 말한다"는 내용이 있다. 대흠무는 대조영의 손자로 3대 임금인 문왕이다. 2대 임금인 무왕도 자신은 고려의 왕이라고 하였다. 발해의 왕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고려라고 불렀던 것이다.

발해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고려라고 하였다. 이 고려는 장수왕이 나라 이름을 고구려에서 고려로 바꾼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발해는 고(구)려가 부활한 것으로 왕이 '고'씨에서 '대'씨로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왕건의 고려 당대에는 고구려를 그냥 고려라고 하였다. 구분할 때는 고구려를 구고려(丘高麗)라고 부르면서, 왕건이 세운 고려를 후고려(後高麗)라고 불렀다고 한다.

발해를 주체적인 관점에서 어떤 명칭의 나라로 부르는 것이 좋을까? 대조영을 진국왕(振國王)이라고 했음으로 발해를 진고려(振高麗)라고 부르면 될것 같다. 우리 역사의 주인은 우리가 되어야 하고 그 명칭도 주인답게 바로 사용해야 한다.

공영방송이라면 이런 역사사실을 국민들이 제대로 알수 있도록 하여 국민들이 주인정신으로 역사를 볼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주인정신으로 역사를 보는 사학자를 출연시켜야 하는데 KBS의 '역사저널 그날'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협조한 매국의 동북아역사지도를 그린 사학자를 계속 출연시킨다.

바른 고려 국명을 교과서에서 다루어야 한다. 역사를 지도하는 선생님들도 이런 것을 제대로 교육해서 고려 국명을 바로 알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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