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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기적
포항의 기적
  • 경남매일
  • 승인 2024.02.0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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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흠 법무법인 우리들 변호사
박상흠 법무법인 우리들 변호사

지금 포항은 소송 중이다. 법원은 지열발전 실증연구수행으로 수리자극이 시행되었고, 결과적으로 지진단층의 충돌을 발생시켜 포항시민들의 생명과 신체에 위협을 가하고 정신적 공포를 일으켰기 때문에 연구수행을 위탁한 국가에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포항지진을 목도하며 오늘의 포항을 특별도시로 이끈 포항제철을 떠올리게 된다.

이승만정권 당시 독일유학을 떠난 김재관은 뮌헨대학교에서 1961년 특수강관련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주제는 '연강조직 재결정에 대한 질화알루미늄의 영향에 관한 연구'였다. 질화알루미늄은 열전도율이 뛰어나 오늘날 반도체의 필수소재다. 유럽 최고의 철강회사 데마크사에서 근무한 그는 선진 철강기술을 습득했다. 김 박사는 6·25의 잿더미에서 스러진 조국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산업이 일어나야 하고 산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산업의 쌀인 철강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철강이 있어야 차, 항만, 조선을 제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그가 작성한 보고서가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이다. 때마침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부흥의 길을 안내받기 위해 독일을 방문했다. 조국의 도약을 위해 자신에게 건의할 사항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달라는 박통에게, 김재관은 보고서를 전달하며 철강산업의 육성이 국가경제의 기초임을 역설했다.

경제부흥을 슬로건으로 내건 박정희 정권은 철강산업을 일으켜야겠다는 일념하에 이를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자금이 없었다. 세계은행(IBRD)는 한국의 철강회사 설립을 위한 차관지원에 냉소를 표했다. “한국의 종합제철소 건설은 시기상조이며 타당성이 없다.” 박정희정권이 찾아낸 자금줄은 대일청구권자금 협상이었다. 대일청구권의 자금 사용처는 포항제철소 설립이었고 일본정부와 긴 줄다리기협상이 진행됐다. 대한제국 황실의 부지인 아카스카 프린스 호텔에서 1969년 11월 19일 첫 협상을 시작했다. 협상을 타결시킨 주인공은 바로 김재관 박사였다.

일본은 한국이 제철공장 건설을 하더라도 자국의 경쟁대상이 안되길 바랬으며 그저 고물상 수준의 철강회사를 건립하도록 요구했다. 한국은 지상 100m 높이의 용광로인 고로방식을 요청했으나 일본은 이를 반대했다. 한국은 용해 금속을 주형으로 연속적으로 주입해 응고하는 연속주조를 원했지만 일본은 거부했다. 한편 김재관은 일본이 제안한 압연공장의 장비선정에서 핫코일 제조장비 중 연속수조가 빠진 부분을 지적했고, 일본은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김 박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일본 측에 역제안을 한다. 철강 생산과정에서 오스트리아가 발명한 LD전로 즉 순도높은 산소가스를 고압으로 투입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술을 도입하자고 말이다. 일본 측 철강 전문가들은 타당성 검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배우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일본은 특수강 생산을 반대했다. 탄소 0.04~2% 미만 함유된 특수강 없이는 비행기와 군함 유조선 그리고 자동차의 엔진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반쪽짜리 제철공장이 되고 만기에 김재관 박사는 완강히 거부했다. 김 박사는 강재를 정사각형 모양으로 만드는 블룸과 블루밍 생산공장도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수용하지 않을 때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김 박사의 꿈은 철강을 이용해 차와 조선 그리고 항공모함을 만드는 대한민국을 그리고 있었기에 이를 반대하는 일본의 의견에 결코 굽힐 수 었었다.

결국 김 박사의 집념은 일본을 무너뜨렸다. 일본의 전쟁배상금으로 포항에서 모래 삽을 뜬 이후에도 불철주야고 김 박사는 치밀한 설계와 공사수행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오늘날의 포항제철은 지금도 가동되고 있다. 또 김 박사는 한국표전과학연구원설립과 자동차산업의 표준모델을 만드는데 선구자가 되었고, 조선산업을 일으킬 것을 강력히 건의해 이를 관철시켰다. 그의 혜안과 산업설계는 오늘 대한민국을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이끈 초석이 된 것이다. 일본 협상단 앞에서 최빈국의 나라 대한민국의 공학자가 선진기술로서 승기를 잡아내고 협상을 이끌어낸 뛰어난 공학기술 못지않게 국가를 향한 사심 없는 헌신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오늘 한국의 미래의 길도 그를 통해 안내받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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