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7:40 (토)
책에서 나무를 읽다 - 안 화 수
책에서 나무를 읽다 - 안 화 수
  • 경남매일
  • 승인 2024.01.1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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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 냄새 밴 국어 교과서에서
오래된 나무를 읽는다

소맷자락은 보이지 않고
쓰러져 흐느적거리는 
키 작은 나무의 손 읽었네
고등학교 일학년 교실 
학생들은 철없이 떠드는데
새끼손가락 두 개만 선명하다

나무는 큰 소리로 울고
또 울었다
대리석 바닥에, 비단 방석에 
다리 곧게 뻗을 수 있는 곳 마다하고
여기까지 와서 생고생을 하는구나

이렇게 너를 만났으니
늘 곁에 두고 보면서 말을 섞고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곳에는 
형광펜으로 줄 긋고 동그라미 그릴게

- 시집 『늙은 나무에 묻다』 중에서

시인 약력

- 1998년 『문학세계』 신인 문학상으로 등단.
- 마산문인협회장, 경남문인협회 부회장, 『경남문학』 편집 주간 지냄. 
- 시집 『까치밥』, 『명품 악보』, 『늙은 나무에 묻다』 외. 
- 창원시문화상(문학부문), 조연현문학상, 경남 올해의 젊은작가상 등 수상. 
- 종합 문예지 『시애』 편집장. 

☞  인류의 운명을 주도한 것은 나무이다. 노아의 홍수 때 인간을 구원한 방주도 나무로 만들었다. 예수도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달렸다. 문명을 주도한 기록의 역사에도 나무는 종이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인간의 손에 가장 가까이 살고 있다. 어릴 때 종이로 만든 책을 보며 인류는 문자를 배우고 익혔다. 나무로 지은 집에서 나무로 만든 침대에서 잠들고 일어났다. 인간의 수명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가진 나무는 수호신처럼 마을 곳곳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지금 갑자기 지구상에서 나무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인류의 종말을 향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나무는 말을 못 하는 대신 말을 전하는 메신저로 지구의 역사를 주도한 가장 인간 친화적인 영물이다. 신이 준 가장 커다란 선물을 하나만 선택하라면 바로 나무를 꼽고 싶다. 나무가 없었다면 시도 시집도 없었을 것이다.       -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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