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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사를 계승한 임강사(臨江寺)
왕후사를 계승한 임강사(臨江寺)
  • 경남매일
  • 승인 2024.01.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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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스님
도명스님

가야의 역사를 전해주는 「가락국기」에는 서기 42년 가야(가락국)를 건국한 김수로왕이 6년 후인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을 배필로 맞이했다고 나온다. 또 왕은 현 창원시 진해구 가주동에 있는 명월산 아래 별포(주포) 마을에 천으로 만든 야외 궁전인 만전( 殿 )을 설치해 공주와 이틀 밤을 보냈다고 한다. 1708년 증원스님이 찬술한 「김해명월사사적비」에는 후일 수로왕이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해 명월산 서쪽에는 세자를 위해 신국사를, 동쪽에는 허왕후를 위해 진국사를, 산 중앙에는 자신을 위하여 흥국사를 지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가락국기」에는 서기 452년 가야 8대 질지왕이 시조 할아버지와 시조 할머니가 합혼한 만전 자리에 허왕후를 위한 왕후사(王后寺)를 지었다는 내용과 함께 왕후사 폐사에 대한 기록도 나온다. 여기에는 나중에 건립된 장유사의 삼강(三剛, 세 명의 주요 소임자)이 이상한 명분을 들어 왕후사를 완전히 폐사시켰다고 하는데, 일연스님은 장탄식하며 이때의 상황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명확하진 않으나 폐사된 왕후사를 계승한 임강사라는 절이 등장했고, 조선시대의 여러 지도를 보면 명월산 뒤쪽에 임강사가 그려져 있다. 대개 역사에서 이름있는 상징물이 사라지고 난 후 다른 곳에 그것을 계승한 상징물을 세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임강사가 그런 경우이다. 그래서 작년 강서구 미음동 수참마을이 고향인 양산 보문사 주지 성광스님과 함께 임강사 옛터를 찾아 나섰다.

언제나 답사는 마음 설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답사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왜냐면 지난해 늦여름 스님과 명월산 정상을 넘어 임강사지를 찾았지만, 당시 한나절을 헤매기만 하다 절터는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40여 년이란 세월은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숲도 우거져 낙엽 질 때를 기약했고 우리는 지난 1월 5일 다시 산을 올랐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는데, 주포마을이 있는 명월산 앞쪽이 아니라 레미콘 공장이 있는 산 뒤쪽이었다. 공장을 진입하여 돌산을 깎아낸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간단한 짐을 챙겨 목적지로 향했다. 그러나 산업화로 산은 엄청나게 깎였고 그곳으로 가던 옛길은 모두 사라져 우리는 잡목을 헤치며 길 없는 바위산을 조금씩 올라가야만 했다. 산을 오를수록 경사는 더욱 심해졌고 나중엔 거의 기다시피 하여 겨우 그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스님이 어릴 적 놀았다는 그곳은 시누대라는 산죽만 가득해 어디가 어딘지 구분할 수 없었고 한참 헤매고 난 다음에야 가까스로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산죽밭을 벗어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비로소 지형이 제대로 보였는데 우리가 헤매던 산죽밭에 평평한 터가 있었다. 그래서 잠시 쉴 틈도 없이 곧장 다시 산죽밭으로 가서 낙엽을 걷어내 보니 과연 기와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스님도 옛날을 회상하며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더니 "여기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다만 원래는 터가 두 곳이었는데 한 곳은 석산 개발로 인해 완전히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사라진 그 터에는 자그마한 샘도 있어 놀다가 목마르면 항상 그 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아주 좋았다고 했다.

왕후사의 후신이라는 임강사가 언제 건립되었다가 언제 폐사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김해의 옛 지도들에는 임강사의 흔적이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는데, 광여도김해부(1736~1776), 금관고적(1760년경), 영남지도김해부(18세기), 경상도읍지김해부(1800~1834), 각읍지도김해부(조선후기) 등이 있다. 그런데 지도를 살펴보면 <금관고적>에만 임강사가 태정 응달리에 있고 다른 모든 지도들에는 임강사가 명월산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옛 지도들은 현재의 지도만큼 정밀하지 못하다. 하지만 현지답사를 통해 본 임강사의 위치는 우리가 찾은 곳인 듯했다. 왜냐면 그곳은 현재의 지사천 뿐 아니라 멀리 김해평야를 지나 부산까지 잘 보이는 명당이며 여러 개의 옛 지도와 부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높은 산 위의 옛터에 기왓장이 흩어져 있다는 것은 그곳이 수행자가 살았던 암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스님이 어릴 적 기억하는 지사천은 여름이면 친구들과 뛰놀고 목욕하던 추억이 서린 강이었다. `임할 臨`에 `강 江` 자를 사명(寺名)으로 한 임강사는 말 그대로 맑은 강을 눈앞에 두고 경치 좋은 곳에 있었다.

스님도 어릴 적을 회상하며 향수에 젖은 듯이 하는 한편 너무나 변해버린 고향 산천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옛터가 반이라도 남아있다는 사실을 위로 삼아 함께 하산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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