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3 03:18 (토)
서로 맞지 않을 때 `손절` 아닌 물이 돼야
서로 맞지 않을 때 `손절` 아닌 물이 돼야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1.11 0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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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②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마음의 여유 갖고 흘러가보라
끝내 넓은 바다로 나아간다"

최근에 인간관계와 관련한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상대와 자신이 맞지 않을 때는 빨리 손절하라고 조언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손절`이라는 말은 처음에는 주식에서 사용하는 경제 용어였다. 원래는 손절매(損切賣)라는 말로, 앞으로 주가(株價)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해,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일이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그러다가 차츰 인간관계에서 서로 맞지 않거나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 때 인간관계를 빨리 정리할 때 사용하는 말로 `손절`이라는 단어가 국민 단어가 될 정도로 급격하게 확산됐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손절`이라는 말을 우리 생활에서 오랫동안 써왔던 것처럼 아주 친근하게 사용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나의 언어의 한계들은 나의 세계의 한계들을 의미한다(5.6).`고 밝히고 있다. `손절`이라는 말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세계의 한계들을 의미한다고 말한다면 과장된 진단이 될까? 그 사람을 알려고 하면 그 사람이 쓰는 말과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사회를 알고 싶다면 역시 그 사회에서 자주 쓰이는 말을 종합해 보면 그 사회를 어느 정도 진단할 수 있다. 괴롭힘을 당하는 인간관계에서 손절만이 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익 관계에 따라서 손쉽게 손절하는 사회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이다.

서로의 생각이 다를 때 상대의 생각을 충분히 듣고 서로 조율하는 문화가 아쉽다. 서로의 주장을 위해 목소리 높여 외치기만 한다면 극단과 극단이 팽팽하게 줄다리기하다가 그 줄이 끊어질 수 있다. 서로가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 아래의 시 한 편을 쉬어가며 천천히 읽어보길 권한다.

강은교 시인
강은교 시인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 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강은교 시집 `슬픈 노래`(1988)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도덕경(道德經)》 제8장에 나오는 말이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의 성질을 최고의 이상적인 경지로 삼는 도가의 말이다.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물은 더러운 것을 만나면 깨끗하게 씻어준다. 생명이 있는 것을 만나면 생명을 키운다. 바위를 만나면 바위를 돌아서 흐른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리고 끝내는 넓은 바다로 가고야 만다.

이 시적 화자는 서로가 성격이 맞지 않고 생각이 달라 갈등으로 치달아 속에서 불이 나고 속이 시커멓게 타면 일단 속의 불을 끄고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도 새롭게 마음을 물로 씻고 우리가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 같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물처럼 흘러가 보라고 말이다.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까 봐서 상대를 저울로 달고 저울이 상대방 쪽으로 기울고 있으면 가감하게 버리는 일은 좀 천천히 하라고 말이다. 일단 한숨 고르고 멀리 떨어져 있어 보고 물이 돼서 한번 흘러가 보라고 한다. 흘러가면서 시간도 벌고 마음도 정화하고 다시 한번 깨끗한 하늘을 마음 안에 들여놓아 보는 것은 어떤지 제안하고 있다. 시적 화자의 제안을 따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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