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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필법과 술이부작
춘추필법과 술이부작
  • 경남매일
  • 승인 2024.01.07 21:2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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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역사서나 사회비평 글을 읽어보면 춘추(春秋)라는 말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춘추는 춘하추동(春夏秋冬) 4계절의 준말로서 봄과 가을이지만, 1년보다 긴 시간흐름인 세월이라는 말로 쓰인다. 그리고 어른의 나이를 호칭할 때 연세보다 높은 존댓말이다. 이처럼 춘추는 시간의 흐름을 비유하는 단어로 쓰이지만, 공자가 고대 중국의 노(魯)나라 역사를 기록한 사서 <춘추>에서 유래한 말이다.

유교 13경(經)은 시경, 서경, 역경, 주례, 의례, 예기, 춘추좌씨전, 춘추곡량전, 춘추공양전,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말한다. 춘추좌씨전, 춘추곡량전, 춘추공양전을 삼전(三傳)이라 하는데 <춘추>의 해설서이다. 좌씨, 곡씨, 공씨가 썼다고 하여 그렇게 불린다. 춘추삼전과 짝을 이루는 주례, 의례, 예기를 삼례(三禮)라 한다. 삼례는 역학자 정현이 주소(注疎)한 삼례를 으뜸으로 친다. 이처럼 경(經)과 예(禮)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의 핵심 요소이다.

<춘추>는 중국 25사(또는 24사) 서술의 준거처럼 되었다. <춘추>를 얘기하자면 이 역사서의 배경이 된 춘추전국 시대를 상고해 봐야 한다. 무왕이 은나라(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건국한 이래 12명의 왕이 대를 이어 275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이 때를 서주(西周) 시대라 한다. 서주의 마지막 왕인 유왕의 아들인 13대 평왕이 수도를 호경에서 낙읍으로 천도한 후 37대 학왕이 진시황제에게 멸망당할 때까지를 동주(東周)시대라고 한다. 이 동주시대가 바로 춘추전국 시대이다. 춘추 시대는 동주의 전반기인 13대 평왕원년(BC771)~26대 경왕 43년(BC477)까지 294년 동안을 말한다.

춘추 시대의 역사기록이 바로<춘추>이다. 전국 시대는 동주의 후반기인 27대 원왕원년(BC476)~37대 학왕까지로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까지(BC221) 255년 동안을 말한다. 전국(戰國)이라는 용어는 전한의 대유학자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에서 나왔다. 춘추 시대는 170개 나라가 있었으나 역사적으로 고증되는 나라는 10개이며, 춘추5패(春秋五覇)는 제환공, 송양공, 진(晉)문공, 진(秦)목공, 초장왕을 말하지만 여러 학설(9종)이 존재한다. 전국 시대는 전국칠웅이라 부르는 제, 초, 진, 연, 한, 조, 위 일곱 나라가 군웅할거(群雄割據) 하던 시대였다.

<춘추>를 편찬한 공자는 노나라 사람이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한 후 일족공신에 대한 논공행상에서 동생인 주공 단(旦)을 노(魯)땅의 제후로 봉했는데 이 나라가 노나라이다. 공자가 편찬했다는 노나라 역사서 <춘추>는 편찬자에 대한 진위 논란이 있다. 한국 고사역(故事易)의 개척자인 김상천 박사는 <논어>에는 <춘추>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고 한다. 공자가 논어 술이편에서 '기술은 하되 지어내지 않는다'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을 말했다.

역사는 사실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역사기술의 대원칙을 말했지만 <춘추>에 관한 언급은 없다.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에도 '공자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물러나 시, 서, 예, 악을 편수하였다'며 <춘추>를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춘추>는 노나라 사관들이 기술한 역사서라고 주장한다. <춘추>라는 책 이름은 반고의 <한서> '예문지'에 제왕의 일을 기록한 것을 <춘추>라고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역사서의 통칭으로 보고 있다. <묵자> '명귀'에는 주나라 춘추, 연나라 춘추, 송나라 춘추, 제나라 춘추 등의 기록으로 보아 주나라 여러 제후국에서 기록한 역사의 일반명칭이라는 주장이다.

<춘추>의 공자편찬 진위논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유학자들에 의해 공자의 편저로 기정된 통설을 번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중국 호남성 장사시 동쪽 교외에서 발굴된 마왕퇴 한묘백서에 대한 고고학자들의 해석이 인정되면 진위논란은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춘추>는 노나라 역사 및 이와 관계있는 여러 나라의 사건들을 기술하되 윤리적 입장에서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가치판단을 내렸는데, 이것을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고 한다. 춘추필법은 <춘추>에서 비롯한 동양의 역사서술 수사법이다. 사건과 인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와 평가보다 수사법 자체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완곡어법으로 평가를 대신한다.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사람은 실제보다 직위를 깎아서 기록하는 식이다. 이것은 <춘추> 자체가 역사서가 아닌 공자의 사견이 담긴 해설서라는 반증이다.

이러한 춘추필법은 역사란 객관적 진실을 담아야 하는데 왜곡되고 거짓이 너무 심해 믿기 어렵다는 견해가 존재한다(김상천. 춘추점서역). 학계나 평자의 춘추 관련 글 중 춘추필법을 춘추직필(春秋直筆)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하여 사회현상을 비판하는데 이는 역사 고증에 대한 천착의 부족에서 비롯된 소치이다. 논어 '술이부작'과 '춘추필법'의 방법론적 관계 설정은 사적 고증에 근거한 객관적인 논설이어야 한다. 어설픈 논리 전개로 견강부회하는 것은 자기 무지의 폭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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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4-01-08 20:39:45
이처럼 노(魯)에 전해지던 기록을 공자(孔子)가 스스로의 역사 의식과 가치관에 따라 새롭게 편수(編修)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 오늘날의 《춘추(春秋)》이다.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의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편(篇)에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진다. “군자는 죽은 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것을 걱정한다. 나의 도가 행해지지 않았으니 그럼 나는 무엇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기겠는가. 이에 공자는 역사의 기록에 근거해서 《춘추(春秋)》를 지었다. …
.출처: 춘추 [春秋]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윤진한 2024-01-08 20:38:57
242년 동안의 역사(歷史)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5세기 초에 공자(孔子, BC 552~BC 479)가 노(魯)에 전해지던 사관(史官)의 기록을 직접 편수(編修)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학(儒學)에서 오경(五經)의 하나로 여겨지며, 동주(東周) 시대의 전반기를 춘추시대(春秋時代)라고 부르는 것도 이 책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

공자(孔子)가 편수(編修)하기 이전에 이미 노(魯)에는 《춘추(春秋)》라고 불리는 사관(史官)의 기록이 전해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맹자(孟子)》에는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열국(列國)들이 각각 사관(史官)을 두어 사적(事跡)을 정리했는데, 진(晉)에는 ‘승(乘)’, 초(楚)에는 ‘도올(檮杌)’, 노(魯)에는 ‘춘추(春秋)’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

윤진한 2024-01-08 20:38:11
한쪽만 보고, 正史,定論등과 상이한 주장을 하는경우, 여러 학문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한국사, 세계사 및 유교경전, 가톨릭경전과 대조하고, 중국의 정사들도 같이 비교해보아야 할것입니다. 그도 않되면, 백과사전등에 실린 견해도 좋습니다. @기원전 5세기 초에 공자(孔子)가 엮은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사서(史書).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의 은공(隱公) 원년(元年, BC 722년)부터 애공(哀公) 14년(BC 481년)까지의 사적(事跡)을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유학(儒學)에서 오경(五經)의 하나로 여겨진다.
.출처:춘추 [春秋]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춘추(春秋)》는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의 은공(隱公) 원년(元年, BC 722년)에서 애공(哀公) 14년(BC 481년)까지 12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