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1:08 (목)
삶 벼랑 끝서 포기 못한 '욕망'
삶 벼랑 끝서 포기 못한 '욕망'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1.03 2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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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것인가
첫 번째 조명 백석 시
시인 백석
시인 백석

삶의 체감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힘들 때일수록 고매한 마음의 등불이 필요하다.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것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시인의 시인인 백석의 시가 그렇다. 백석의 시는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들며 또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반복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한다. 내 삶이 비록 지금 힘들어도 현실에만 함몰되지 말고 그래, '고매하고 소중한 정신 하나는 품고 살아가야지' 하며 마음을 움직이는 시가 있어서 소개한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굿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호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는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의 방에 세를 사는 시적 화자이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사람도, 집도 없어지고 갈 곳 없는 외로운 처지에 어느 목수네 집에 방을 빌려서 살고 있다.

날은 춥고 바람은 세게 불고 하루종일 생각에 생각을 하며 보낸다. 슬픔 속에 외로워서 죽을 것만 같다. 외로운 생각만이 든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가난하고 외롭고 힘든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힘들지만 더 큰 것을 생각한다.

어느 먼 산에서 외로이 서서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힘든 삶을 회피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자신의 마음속에 심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굳고 정한 갈매나무로 살겠다는 것이다.

레비나스 식으로 말한다면 내 안에 무한의 관념을 심는 것이다. (물론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시적 화자는 삶의 벼랑 끝에 서 있어도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 초월을 향한 욕망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힘든 현실 속에서도 곧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현실의 무게에 파묻히지 말고 나만의 갈매나무를 정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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